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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볼산에서 내려와 우리의 일상의 관계로

 

타볼산의 빛, 거저 주시는 은총의 산맥 아래에서 아침 묵상을 해봅니다. 우리가 땀 흘려 쌓은 성채가 높아서 당신이 찾아오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손패가 깨끗하여 당신의 빛을 만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느님, 당신은 그저 당신의 선하신 목적과 가늠할 수 없는 은총의 깊이에 따라, 먼지 속에 앉아 있던 우리를 불러 세우셨습니다. 그 부르심은 마치 타볼산 위에서 홀연히 터져 나온 그날의 눈부신 서광과 같습니다. 제자들은 산을 오르며 자신의 숨 가쁨을 계산했고, 정상에 서서 초막 셋을 지어 공로를 남기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영광은 인간의 건축술 안에 갇히는 법이 없으며, 인간의 의지로 길들여지는 빛이 아닙니다. 해보다 밝게 빛나는 당신의 얼굴은 우리가 무언가를 '해냈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에 내비치는 구원의 확증입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구름 속에서 들려온 그 음성은 타볼산의 예수를 향한 선포인 동시에, 은총 안에 머무는 우리를 향한 초대였습니다. 우리는 거룩해지기 위해 부름받은 것이 아니라, 당신이 먼저 우리를 거룩하다 불러주셨기에 비로소 거룩한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행실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당신이 거저 주신 그 눈부신 빛에 대한 떨리는 응답일 뿐입니다. 타볼산의 빛은 산 아래 낮은 곳으로 우리를 다시 보냅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이전과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내 힘으로 구원을 움켜쥐려던 조바심을 내려놓고, 오직 당신의 목적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몸을 맡깁니다. 산 위에서 본 그 영광스러운 광채를 심장에 품고, 이제 우리는 삶의 비탈길에서도 은총의 노래를 부릅니다. 우리를 부르신 이는 우리가 아니라 당신이시기에, 이 구원은 결코 바래지 않는 영원한 빛으로 우리 앞길을 비춥니다.

 

타볼산에서 내려와 우리의 일상의 관계로

성 프란치스코의 영적 권고가 비추는 내적 가난의 길 위에서 타볼산을 바라보니다. 타볼산 위에서 빛은 눈부시게 찢어졌고 그분의 얼굴은 태양처럼 타올랐으며 그분의 옷은 이 세상의 어떤 표백도 닿을 수 없는 순결한 광휘로 떨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그 순간을 붙잡고 싶었습니다. 천막 셋을 짓고 이 영광을 고정시키고 싶었습니다. 사라지지 않는 빛 속에 머무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빛은 머무르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내려가라고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산 위의 빛은 산 아래의 어둠을 위하여 존재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내려옵니다. 빛을 붙잡지 못한 채 아니, 빛을 붙잡지 않기로 선택한 채 다시 우리의 일상으로, 다시 우리의 관계로, 다시 우리의 상처와 오해와 설명되지 않는 침묵들 사이로 천천히 걸어 내려옵니다. 타볼산 아래에는 여전히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아침 식탁 위에 놓인 무심한 한 마디가 밤새 기도하던 마음을 무너뜨리고, 길에서 마주치는 짧은 눈길 하나가 내 존재 전체를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묻습니다. “타볼산의 빛은 어디로 갔는가.” 그러나 그 빛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꾸어 우리 앞에 서 있습니다. 그 빛은 이제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형제의 얼굴로 서 있습니다. 그 빛은 이제 나를 오해하는 자매의 침묵 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빛은 이제 내가 붙잡고 싶은 나 자신을 내려놓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말합니다. 진정으로 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마저도 자기 것으로 붙잡지 않는 사람이라고. 내적 가난이란 내가 옳다는 확신으로 나 자신을 소유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상처를 내 정체성으로 소유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행한 선을 내 공로로 소유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사랑조차 내 소유로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내적 가난이란 나 자신을 하느님의 손 안에 그대로 남겨두는 것입니다.

 

타볼산에서 내려온다는 것은 빛을 잃는 것이 아니라 빛을 소유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빛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빛이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옳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지나갈 수 있는 빈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지나갈 수 있도록 나를 비워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고통스럽습니다. 내 안의 자아는 끊임없이 말합니다너 자신을 지켜라.” “너 자신을 설명하라.” “너 자신을 증명하라.” 그러나 내적 가난은 증명을 포기하는 용기입니다이해받지 못할 자유설명되지 않을 자유인정받지 못할 자유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그때 내 안에서 이상한 평화가 시작됩니다더 이상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싸울 필요가 없어집니다.

 

타볼산에서 내려온 빛은 기적 속에 머물지 않고 관계 속으로 들어옵니다. 형제가 나를 밀어낼 때 나는 나 자신을 붙잡지 않고 하느님께 나를 맡깁니다. 자매가 나를 오해할 때 나는 나 자신을 방어하지 않고 진리가 스스로 말하도록 침묵 속에 머뭅니다. 이 침묵은 패배가 아니라 내적 가난의 열매입니다. 이 침묵은 공허가 아니라 하느님이 머무를 공간입니다. 내적 가난은 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나를 하느님의 현실 안으로 옮겨 놓습니다. 그때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의 중심이 아니라 하느님의 흐름 안에 놓인 작은 통로가 됩니다. 그때 나는 이해합니다. 타볼산의 빛은 산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내려놓는 이 순간에 여기 있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다시 일상의 길 위를 걷습니다. 설거지를 하고, 문을 열고, 형제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매의 한숨을 듣고, 그 모든 평범한 순간들 속에서 타볼산의 빛은 조용히 숨 쉬고 있습니다. 빛은 더 이상 눈부신 형상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소유하지 않는

이 가난 속에서 살아 움직입니다. 타볼산에서 내려온 사람은 더 이상 빛을 찾지 않습니다. 그는 빛이 될 필요도 없고, 빛을 증명할 필요도 없고, 빛을 붙잡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는 다만 비어 있습니다. 그 비어 있음 속에서 하느님은 자유롭게 흐르십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우리의 일상의 관계는 타볼산이 됩니다타볼산의 변모가 내면의 변화로, 사랑받음으로 빛나는 얼굴, 내어주는 몸으로 빛나는 얼굴, 관계안에 흐르는 선의 얼굴, 하느님 나라의 현재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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