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214 추천 수 1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도구적 존재로서의 지혜

 

세상은 늘 분주하게 계산합니다. 어느 편이 이기는지, 어느 쪽이 더 높이 오르는지,누가 더 많은 박수를 받는지. 눈에 보이는 승리의 깃발이 펄럭일 때 사람들은 안도하고, 패배의 그림자가 드리울 때 고개를 돌립니다. 권력은 스스로를 지혜라 부르고, 효율은 정의의 옷을 입고, 성공은 축복의 증표인 듯 행세합니다. 그러나 사도는 말합니다. 그것은 잠시뿐인 지혜라고.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시간 속에서만 통하는 계산일 뿐이라고.

 

하느님의 지혜는 다릅니다. 그것은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아득한 창조 이전의 고요 속에서 이미 준비된 신비였습니다. 그 신비는 하늘의 보좌에서 빛나는 권능이 아니라, 인간의 영광을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어주기로 정하신 하느님의 조용한 결심이었습니다. 지배하지 않으시고, 억누르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스스로를 비워 인간의 운명 안으로 들어오시는 길. 그 길이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는 세상의 눈에 실패였습니다. 손에 못이 박히고, 이마에 가시가 얹히고 숨이 끊어지는 그 자리에서 누가 승리를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 권력자들은 안도했을 것입니다. 질서는 유지되었다고, 위협은 제거되었다고, 정의가 실행되었다고. 그러나 그들이 몰랐던 것이 있습니다. 그들이 알았다면 결코 하지 않았을 일.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그 순간, 그들이 붙들고 있던 지혜의 토대가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십자가는 패배가 아니라 하느님의 지혜가 완성되는 자리였습니다. 사랑이 끝까지 가는 자리, 용서가 마지막 숨결까지 머무는 자리, 증오가 더 이상 힘을 행사하지 못하는 자리. 그날, 세상은 승리했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사랑이 승리했습니다. 침묵 속에서, 피 흘리는 육신 안에서, 조롱과 외면 속에서 하느님의 지혜는 조용히 빛났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세상의 기준으로 자신을 재려 합니다. 얼마나 인정받았는지, 얼마나 영향력을 가졌는지, 얼마나 효율적으로 살아냈는지. 공동체 안에서도 관계 속에서도 우리 마음은 종종 계산기를 두드립니다. “내가 이만큼 했으니”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이 길이 과연 의미가 있는가그러나 십자가는 우리의 계산을 멈추게 합니다. 거기에는 이익도, 보상도, 눈에 보이는 성공도 없습니다. 오직 끝까지 남는 사랑만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지혜는 항상 가장 낮은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자리, 인정받지 못하는 자리, 억울함이 스며드는 자리. 그 자리에서 당신은 도망치지 않으셨습니다. 사랑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의 우두머리들은 그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해할 수 없었기에 두려워했고, 두려웠기에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이해되지 않는 사랑 앞에서 불편해지고, 설명되지 않는 용서 앞에서 초조해지고, 손해 보는 선택 앞에서 고개를 젓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지혜는 언제나 그렇게 옵니다. 어리석어 보이는 선택으로, 패배처럼 보이는 인내로, 무력해 보이는 온유함으로. 그리고 그 어리석음 속에서 새로운 창조가 시작됩니다. 십자가는 끝이 아니라 영광의 시작이었습니다. 인간을 억누르는 영광이 아니라, 인간을 일으켜 세우는 영광. 지배하는 영광이 아니라, 함께 고통받는 영광. 하느님은 우리 위에 군림하기보다 우리 곁에 매달리기를 택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높은 지혜가 드러났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 안에 십자가처럼 보이는 자리가 있다면, 사람들이 실패라 부르는 자리, 아무 열매도 없는 듯한 자리, 침묵과 오해가 가득한 자리라면, 어쩌면 그곳이하느님의 지혜가 숨 쉬는 자리일지 모릅니다. 세상의 눈에는 감추어져 있으나 하느님의 마음에는 이미 완성된 그 신비의 자리. 십자가는 사라지지 않는 질문으로 우리 앞에 섭니다. “너는 어떤 지혜를 따르겠느냐.” 높아지려는 지혜인가, 낮아지려는 지혜인가. 지배하려는 지혜인가, 내어주려는 지혜인가. 우리가 사랑을 선택하는 순간마다 세상은 조금씩 패배하고, 하느님의 지혜는 다시 태어납니다. 그리고 그 느린 빛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십자가 아래에서 시작된 그 빛은 여전히 우리의 가장 어두운 자리에서 조용히 타오르고 있습니다.

 

도구로 남을 것인가? 무기로 남을 것인가? 하느님의 지혜을 배우는 사람은 이러한 질문을 자신에게 합니다. 도구로 남는 자유, 무기가 되지 않는 몸, 나는 두 갈래 길 앞에 서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중심이 되는 길, 다른 하나는 내가 도구로 남는 길입니다. 내가 중심이 되면 모든 것은 나를 향해 휘어집니다. 관계도, 기도도, 봉사도 결국은 나를 증명하기 위한 재료가 됩니다. 그때 내 몸은 선물이 아니라 무기가 됩니다. 말은 설득이 아니라 지배가 되고, 침묵은 겸손이 아니라 계산이 되고, 선행은 사랑이 아니라 투자로 변합니다. 돈과 쾌락과 안전은 마치 구원의 약속처럼 속삭입니다. “조금만 더 가지면 괜찮아질 거야.” “조금만 더 누리면 만족할 수 있어.” “조금만 더 확보하면 두렵지 않을 거야.” 그러나 우상은 결코 만족을 주지 않습니다. 우상은 사로잡고, 노예로 만들고, 마침내 파멸시킵니다. 돈은 끝없이 더 요구하고, 쾌락은 점점 더 강도를 높이고, 안전은 점점 더 큰 벽을 쌓게 합니다. 나는 지키기 위해 싸우고, 빼앗기지 않기 위해 경계하며, 결국 사랑을 잃어버립니다.내 몸은 하느님을 전하는 성전이 아니라 불안을 방어하는 요새가 됩니다. 그러나 내가 도구로 존재할 때, 모든 것은 달라집니다. 나는 중심이 아니라 통로가 됩니다.나는 소유자가 아니라 전달자가 됩니다. 내 몸은 자비가 흘러가는 강이 되고, 내 말은 하느님을 선물하는 숨결이 됩니다. 나는 빛을 소유하지 않지만 빛이 지나가게 할 수는 있습니다. 나는 사랑을 만들어낼 수 없지만 사랑이 머물 자리를 비울 수는 있습니다. 하느님이 하시는 일에 내 몸을 재료로 내어 드리는 것, 그분의 진리에 내 시간을 섞어 드리는 것, 그분의 자비에 내 상처를 보태는 것. 이것이 도구적 존재의 길입니다.

 

가진 것을 다 판다는 것은 재산 목록을 정리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중심이 되려는 욕망을 내려놓는 일입니다. 나의 명예, 나의 계산, 나의 통제권. 그것을 손에서 놓을 때 나는 비로소 자유로워집니다. 도구는 억압된 존재가 아닙니다. 도구는 가장 자유로운 존재입니다. 자기 목적에 매이지 않고 창조주의 목적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도구로 존재하는 삶은 패배가 아니라 가장 깊은 영광입니다. 자비의 전달자로, 진리의 협력자로, 은총의 통로로 살아가는 몸. 그 몸은 더 이상 무기가 아닙니다. 그 몸은 하느님의 선물이 됩니다. 하느님, 저를 당신 자비의 도구로 써 주십시오. 그리하여 제가 아니라 당신이 흘러가게 하소서. 그렇게 사는 것이 당신에게서 배우는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자유나눔 게시판

자유롭게 글을 남겨주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771 사랑의 빛 앞에 선 영혼 - 압도적인 사랑이 부르는 자기 심판 사랑의 빛 앞에 선 영혼 - 압도적인 사랑이 부르는 자기 심판 사랑의 빛 앞에 선 영혼은 존재의 밑바닥부터 자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믿음과 영적 체험의 극치에... 이마르첼리노M 2026.02.26 106
1770 요나의 표징은 태도적 변화의 서곡 요나의 표징은 태도적 변화의 서곡   요나 예언자의 표징은 성경에서 '회개'와 '부활'이라는 두 가지 핵심 키워드를 관통합니다. 예수님께서 악하고 음란한 세대... 이마르첼리노M 2026.02.25 108
1769 관계의 심연에서 드리는 주님의 기도 관계의 심연에서 드리는 주님의 기도   &quot;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quot; 이 한 구절은 기도의 중심이 ‘나의 소원 성취’가 아니라 ... 이마르첼리노M 2026.02.24 108
1768 관계의 심층에서 읽는 마태복음 25장 관계의 심층에서 읽는 마태복음 25장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25,40)   이 말... 이마르첼리노M 2026.02.23 107
1767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가지 유혹과 나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가지 유혹과 나   “돌을 빵으로” – 인정 욕구의 광야 광야의 첫 유혹은 배고픔이 아니라 존중받고 싶다는 허기였습니다. 나에게 건네온 무... 이마르첼리노M 2026.02.22 145
1766 무의식의 수면 아래서 건져 올린 가난의 노래 무의식의 수면 아래서 건져 올린 가난의 노래   아침 빛은 소리 없이 낮은 담장을 넘습니다. 그 빛은 화려한 치장을 거부하고, 가장 어둡고 습한 구석부터 조용... 이마르첼리노M 2026.02.21 146
1765 거룩한 허기 (단식) 거룩한 허기 (단식)   참된 사랑은 내 배를 채우는 욕망을 멈추는 '단식'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가두었던 나의 편견과 요구의 매듭을 하나씩 풀어주... 1 이마르첼리노M 2026.02.20 186
1764 날마다 져야하는 십자가의 진실 날마다 져야하는 십자가의 진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루가복음 9:23)   날마다 지는 ... 이마르첼리노M 2026.02.19 202
1763 이상과 현실의 변곡점, 추락에서 만나는 참된 부활 (재의 수요일) 이상과 현실의 변곡점, 추락에서 만나는 참된 부활   인간은 누구나 높은 '이상'을 꿈꾸지만,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곳은 늘 비루하고 나약한 '현실'입니다.... 이마르첼리노M 2026.02.18 197
1762 믿음이 시련을 받으면 믿음이 시련을 받으면   믿음은 시험이라는 가마에 던져질 때 비로소 자기 색을 드러냅니다. 말로 고백하던 신뢰는 상실의 바람 앞에서 비로소 뿌리를 드러내고,... 1 이마르첼리노M 2026.02.17 219
1761 10. 오상 이번 에피소드는 프란치스코의 오상에 대한 것입니다. 이 에피소드는 그리스도의 고통과 그에 담기는 사랑이, 프란치스코에게 또한 일어난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 김상욱요셉 2026.02.16 188
» 도구적 존재로서의 지혜 도구적 존재로서의 지혜   세상은 늘 분주하게 계산합니다. 어느 편이 이기는지, 어느 쪽이 더 높이 오르는지,누가 더 많은 박수를 받는지. 눈에 보이는 승리의 ... 이마르첼리노M 2026.02.15 214
1759 계산기가 없는 나라에서 누리는 자유 계산기가 없는 나라에서 누리는 자유   인과응보의 계산을 넘어, 존재 그 자체를 향한 창조적 사랑에 참여할 때 우리는 비로소 영적 자유를 맛봅니다. 인과응보... 이마르첼리노M 2026.02.15 220
1758 퀸타발레의 베르나르도 형제 이번에 소개할 프란치스코 에피소는 퀸타발레의 베르나르도 형제입니다. 이 형제로 인해, 프란치스코는 자기가 생각하지 못했던 형제들과 함께 회개생활을 하는 ... 김상욱요셉 2026.02.13 261
1757 영적 굴복과 고통의 변형 (내면의 보물을 찾는 여정) 영적 굴복과 고통의 변형 (내면의 보물을 찾는 여정)   인간의 에고는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려 합니다.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저항하며,... 이마르첼리노M 2026.02.13 254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 121 Next ›
/ 121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