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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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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의 기도와 희망의 송가

 

관계 안에 새겨진 수난의 흔적들

한 해의 끝에 서면 나는 무엇보다도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돌아봅니다. 기도를 얼마나 했는가보다, 얼마나 많은 말을 했는가보다, 관계 안에서 얼마나 무너졌고 얼마나 견뎠으며 얼마나 침묵 속에서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는지가 나를 하느님 앞으로 데려갑니다.

 

관계는 언제나 육화의 자리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고독한 영혼 속에만 머무르지 않으시고, 반드시 타인의 얼굴을 통해 나에게 오셨습니다. 그 얼굴은 때로 위로였으나, 더 자주 나의 한계를 드러내는 거울이었습니다. 나는 관계 안에서 나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지 알게 되었고, 얼마나 쉽게 상처 주며, 얼마나 쉽게 방어하고, 얼마나 완강히 자기 의로움을 붙잡는 존재인지 배워야 했습니다. 그 배움은 언제나 아팠습니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스스로를 비워 내려오신 당신의 육화는 바로 이 지점에서 비로소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은 인간의 연약함을 멀리서 관찰하지 않으셨고, 관계의 실패를 도덕적 결함으로만 판단하지 않으셨으며. 당신은 오해와 충돌, 배신과 두려움이 오가는 인간관계의 중심에 몸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수난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신의 수난은 못과 채찍 이전에 관계의 상처였습니다. 알아주지 않는 제자들, 끝까지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들, 침묵으로 등을 돌리는 이들 사이에서 당신은 사랑을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그 사랑이 당신을 십자가로 이끌었습니다. 이제 나는 압니다. 관계 안에서 겪는 나의 수난 역시 그 십자가와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지난 날의 흔적들이 얼굴을 들 때, 이해받지 못하는 순간, 선의가 오해로 돌아오는 시간, 사랑하려 할수록 자아가 찢어지는 경험, 그 모든 것은 나를 망가뜨리기 위한 고통이 아니라 옛 자아가 조용히 죽어 가는 자리였음을관계 안에서 나는 수없이 무릎이 꺾였습니다. 말 한마디에 밤잠을 설치고, 침묵 하나에 존재 전체가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그 무릎 꺾임마다 당신의 선혈이 땅에 스며들 듯 내 안에 흘러들어 왔음을, 이제는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 피는 나를 강하게 만들지 않았고, 옳게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더 이상 쉽게 단죄하지 않는 사람, 상대의 연약함을 자기 방패로 삼지 않는 사람, 기다릴 줄 아는 사람으로 조용히 빚어 갔습니다.

 

수난은 관계의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수난은 관계가 구원으로 변형되는 통로였습니다. 내가 옳아야 했던 자리에서 침묵을 선택하게 되었을 때, 해명하고 싶었던 순간에 설명을 내려놓았을 때,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보다 사랑 자체를 지키기로 결정했을 때, 그때마다 나는 조금씩 당신의 수난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잊고 싶었던 관계의 실패들, 부끄러웠던 감정의 폭발들, 그 모든 것은 나를 낮추는 은총의 도구가 되었고, 나의 교만은 타인의 고통 앞에서 말을 잃게 하는 자비로 바뀌어 갔습니다. 그때 내 안에서 이런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네가 사랑하려 했기에 아팠다. 네가 도망치지 않았기에 수난을 통과했다. 그 길이 내가 걸었던 길이다.” 그 음성 앞에서 나는 더 이상 나의 상처를 변명하지 않고, 나의 실패를 삭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모든 흔적이 관계 안에서 이루어진 구원의 연대기였음을 조용히 받아들였습니다.

 

지는 노을이 슬프지 않은 것은 그 어둠이 부활의 빛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어둠 자체가 빛을 잉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한 해가 저물었습니다. 나는 성취보다 관계의 상처를 더 많이 안고 이 끝자락에 서 있지만, 그 상처들 위에 당신의 수난이 겹쳐져 있음을 믿습니다. 묵은 시간의 먼지를 기도로 털어내며 나는 고백합니다. 관계 안에서 흘린 눈물들이 헛되지 않았고, 사랑 때문에 견딘 모든 순간이 이미 부활을 향해 열려 있었다는 것을

 

겨울의 끝에서 부르는 희망의 찬미가

나목(裸木)과 삭풍에 떠는 겨울 새야, 잎새 하나 남지 않은 빈 가지 위에서도 너희는 꺾이지 않는 노래를 품고 있구나. 가장 낮은 곳에서 부들부들 떨면서도 창조주의 섭리를 온몸으로 증거하는 가냘픈 날갯짓이여! 눈 속에서도 푸름을 잃지 않는 인동초와 채소들아 차가운 대지 밑에서 숨죽여 봄을 기다리는 너희의 인내야말로 가장 뜨거운 찬미가로다. 얼어붙은 땅을 뚫고 기어이 살아내어 생명의 주님을 높여 드리는 그 고요한 강인함을 배우노라. 얼음장 밑으로 소리 없이 흐르는 물들아 겉은 멈춘 듯 보이나 속으로는 쉬지 않고 바다로 향하듯,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시는 은총의 강물을 우리도 믿노라. 하늘에 기댄 채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아, 세상의 풍파가 매서워도 고개를 들어 위를 보자. 우리의 소망은 땅의 단단함이 아닌, 저 하늘의 무한한 자비에 매여 있으니. 지나온 한 해의 끝자락에서 우리 함께 노래하자. 겨울이 깊을수록 봄은 가까이 와 있음을, 어둠이 짙을수록 빛은 더욱 찬란함을, 주님 안에서 우리에겐 여전히 노래할 이유와 함께 나누어야 할 눈부신 희망이 있음을, 관계 안에서 자비를 날라다 준 고마운 이들아! 응답하는 사랑으로 다시 태어날 생명들아! 우리 함께 찬양의 노래로 환희의 송가를 힘차게 부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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