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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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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메온과 함께 하는 아침 묵상

 

세상은 언젠가 막이 내리면 떠나야 할 차가운 임시 무대가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저 멀리 구름 너머에 예약된 미래가 아니라, 오늘 우리가 들이마시는 희박한 공기 속에, 그리고 서먹한 동료와 나누는 짧은 인사 속에 이미 숨을 쉬고 있는 구체적인 현재였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이 소란스러운 세상으로부터 건져 올려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반복되는 직장의 일상으로, 익숙해서 더 아픈 가족의 얼굴들 사이로, 그리고 말 한마디가 화살처럼 박히는 관계의 틈바구니 속으로 우리를 기꺼이 파견하셨습니다. 그곳이 바로 하느님 나라가 개념이라는 옷을 벗고, ‘서로를 살리라는 간절한 요청으로 다가오는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괴롭힌 것은 세상의 험난함이 아니라, 언제나 견고하게 성을 쌓고 있는 내 안의 중심이었습니다. 세속의 가치들은 저마다 화려한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그 뿌리를 들추어보면 결국 하나로 귀결됩니다. 나의 안전, 나의 판단, 나의 상처, 그리고 결코 굽힐 수 없는 나의 옳음. 라는 왕좌를 삶의 정중앙에 모셔두고 있을 때, 세상은 끊임없이 나를 증명해야 하는 피로한 전장이 되고, 타인은 그저 견뎌내야 할 무거운 짐이 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이미 빛 속에 머물고 있다고. 그가 빛 속에 있는 이유는 그가 남들보다 성숙하거나 고결해서가 아닙니다. 그저 그가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중심에 두지 않기로 결단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 삶의 무게중심은 조용히 이동합니다. ‘라는 좁은 감옥에서 라는 광장으로, 다시 우리라는 하느님 나라의 질서 안으로. 그때 비로소 늘 같았던 지루한 일상과 껄끄러웠던 관계들이 전혀 다른 빛을 띠며 반짝이기 시작합니다.

 

빛 속에 머문다는 것은 삶의 모든 난제가 해결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상처는 여전히 쓰리고, 마음은 시시때때로 흔들리며, 어떤 관계는 생의 마지막까지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 그 모든 풍랑 위에서 라는 존재가 왕 노릇 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우리 앞의 거친 길을 평평하게 깎아주는 마법이 아니라, 그 울퉁불퉁한 길 위에서도 기어이 버티며 걸어갈 힘을 주는 까닭입니다. 그리하여 걸림돌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어도, 우리는 더 이상 그것에 걸려 넘어지지 않습니다.

 

이 고요한 중심의 이동 끝에, 성전 한쪽에서 아기 예수를 품에 안은 노인 시메온의 노래가 들려옵니다. 그는 세상이 완벽해졌기에 평화를 노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서도, 헝클어진 관계들이 다 정리되어서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단지 이 작고 연약한 아기 안에서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시작된 것을 보았기에, 이제는 자기 몫의 집착을 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구원을 내 손에 움켜쥐려 하지 않고, 완성을 내 힘으로 앞당기려 하지 않으며, 하느님의 일을 내 책임으로만 떠안지 않는 그 눈부신 자유. 그 자유가 그를 영원한 빛 속에 머물게 했습니다. 프란치스칸으로 산다는 것은 바로 이 시메온의 자리로 매일 조금씩 이사하는 일입니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미 내 안의 라는 중심에서 기쁘게 물러나는 삶입니다.

 

새로 태어난다는 것은 없던 무언가를 덧입는 화려한 장식이 아니라, 내 삶의 가장 견고한 성벽이었던 라는 우상을 무너뜨리는 고통스러운 파쇄였습니다. 우리는 늘 세상을 떠나야 할 임시 정거장쯤으로 여겼으나, 사실 하느님 나라는 우리가 외면하고 싶었던 구체적인 현실, 그 비루하고도 거룩한 지층 아래 이미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안락한 피안으로 도피시키지 않으시고, 도리어 지독하게 반복되는 일상의 궤도 속으로,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관계의 한복판으로 우리를 떠밀어 넣으셨습니다. 그곳이 바로 낡은 내가 죽고 새로운 내가 숨 쉬어야 할 유일한 해산의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나의 기도는 얼마나 인과응보적이고 자만적이었는지요. 세상이 문제라고, 타인이 지옥이라고 탓해왔으나 사실 문제는 언제나 내 삶의 왕좌를 차지하고 앉은 중심이었습니다. 나의 안전을 위협받지 않으려는 본능, 내 판단이 옳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오만, 그리고 내 상처만을 가장 아픈 것으로 전시하며 타인의 눈물을 외면했던 가치 체계들. 이 자아의 중력이 너무도 강해서, 나는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오직 나만을 증명하려 애쓰는 가련한 배우에 불과했습니다. 관계는 어느덧 사랑의 통로가 아니라, 내가 짊어져야 할 피로한 부채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회심은 형제를 사랑하는 그 찰나의 순간, 내 안의 중심이 조용히 붕괴하며 일어납니다.

 

내가 더 이상 중심이 아님을 고백할 때, ‘에게서 우리로 우리에서 보편적 교회로 나아갑니다. 이것은 단순히 성숙해지는 과정이 아니라, 자아라는 껍질을 깨고 하느님 나라의 질서로 편입되는 탄생의 진통입니다. 이 빛의 세계 안에서는 내가 왕좌에서 내려올 때 비로소 타인이 보이고, 내가 옳음을 포기할 때 비로소 진리가 곁을 내어줍니다. 현실은 달라진 것이 없으나, 내가 서 있는 빛의 각도가 달라졌기에 세상은 전례 없는 생경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옵니다.

 

빛 속에 머문다는 것은 상처 없는 무결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마음은 가난하고, 어떤 관계는 뼈를 깎는 인내를 요구하며, 현실의 무게는 어깨를 짓누릅니다. 하지만 이제 라는 감옥에 갇혀 절망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내 앞의 자갈밭을 꽃길로 바꾸어주지는 않지만, 그 거친 길 위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끝내 머물 수 있는 신비로운 근력을 선물합니다. 내가 중심이 아닐 때, 걸림돌은 더 이상 나를 넘어뜨리는 장애물이 아니라 너와 피조물을 향해 하느님께로 오르는 계단이 됩니다.

 

성전의 어스름 속에서 아기를 안았던 시메온의 평화는, 바로 이 자기 비움의 끝에서 피어난 꽃이었습니다. 그는 세상을 다 가졌기에 놓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모든 문제가 마법처럼 해결되어서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다만, 나의 작고 초라한 손보다 하느님의 큰 손이 이미 이 세상을 붙들고 계심을, 그 구원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목격했기에 평온할 수 있었습니다. 구원을 소유하려 했던 욕심을 내려놓고, 완성을 내 손으로 일궈내려 했던 자만을 씻어내고, 하느님의 섭리를 내 책임으로 착각했던 무거운 짐을 벗어던진 자유. 그것이 시메온을 죽음 앞에서도 노래하게 한 새로운 태어남이었습니다. 빛은 이미 우리 사이를 흐르고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내 고집이 꺾인 그 빈자리에서 비로소 시작됩니다. 나는 오늘, 나를 죽이고 형제를 살리려 애쓰는 이 눈물겨운 자리에서, 가장 눈부신 빛 속에 머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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