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 숲에서
나목의 겨울 숲
잎을 모두 내려놓은 채
하얀 순결의 미소로
씽긋,
아무 말 없이 나를 맞는다
비워낸 몸마다
빛이 머물 자리를 남기고
자작나무들은
서로의 침묵을
따뜻하게 건네고 있다
산꼭대기는 이미
한 해를 먼저 건너간
할아버지의 머릿결
눈과 바람과 시간의 주름이
겹겹이 내려앉아
모든 것을 이해한 얼굴
구름 사이
잠시 열린 하늘에서
은총의 빛이
소리 없이 내려온다
기도하지 않아도
이미 기도 안에 와 있는 듯
그리운 님들은
지금 어디에 머물러 있는가
먼 길을 떠난 이들
아직 곁에 있는 이들
이름을 부를 수 없는 그리움까지
자작나무 숲으로
모여라
서로의 빈자리를
탓하지 말고
한 해 동안 잘 견뎌온
서로의 등을
조용히 어루만지며
말보다 숨으로
설명되는 시간
남은 것과 떠나간 것이
함께 자리를 잡는
송년의 시간이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