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유다 이스카리옷 자리를 꼭 메꿔야 하는가?
다시 말해서 빈자리를 다시 채워야 하는가?
빈자리로 남겨두면 안 되는가?
이런 생각을 저는 오늘 마티아 사도 축일에 합니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냐면 요즘 제 주변에서
곧 수도원이나 재속 프란치스코회나 이사회 등에서
자리가 비는 일이 점점 많아지면서입니다.
불가피한 이유로 그런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불가피한 경우는 그가 그만둔 것이 아니라 그만두게 된 것이고,
그러니 하느님의 뜻과 부르심을 거스르는 것은 아니고 이 경우,
우리는 그 자리를 메꿔야 하는데 오늘 마티아 사도의 선출처럼
합의가 아니라 기도로 선출하면 그것이 하느님께서 뽑으시는 것이 됩니다.
문제는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서로의 뜻이 맞지 않아서,
또는 서로 맘이 맞지 않아서 그만두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부족한 인간들이니 그럴 수 있고,
맞지 않는 자체를 그리 문제 삼을 것 없습니다.
맞추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고 맞추지 않으려는 것이 더 문제이겠지요.
왜 맞추지 못할까?
왜 맞추지 않을까?
너에게 맞추기 싫기 때문이겠지요.
나에게 맞추길 바라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께 맞추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랑이 없기 때문이고,
특히 하느님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너에게 맞추는 것은 싫습니다.
내게 맞추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이고 강요입니다.
그러니 서로 맞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으로,
그것도 초대교회 신자들처럼 하느님 사랑으로 한마음 한뜻이 되는 것이고,
역시 초대교회 사도들 공동체처럼 빈자리를 채워야 합니다.
거듭 말하지만 우리는 다 부족합니다.
혼자서는 누구나 부족합니다.
부족할 뿐 아니라 잘못을 저지릅니다.
그러니 부족을 들추는 공동체이거나 부족을 메꾸는 공동체이거나이고,
잘못을 비판하는 공동체이거나
혼자서는 잘못하는 것을 같이함으로써 잘 해내는 공동체이거나입니다.
부족을 탓하지 않고 보완하고,
서로 파괴하지 않고 완성하는.
그런 공동체가 하느님의 뜻과 사랑을 이루는 초대교회 사도 공동체이고,
오늘 우리가 마티아 사도의 축일을 지내는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