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독서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따라
광야를 지나고 홍해를 건너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우리는 주님을 따라서
파스카 여정을 가야 한다는 묵상을 오늘 저는 했습니다.
왜 이런 묵상을 했냐면 제가 전보다 좀 겸손해졌기 때문입니다.
전엔 겁이 없기 때문인지 또는 너무 자신만만해서인지
그냥 가면 되는 것 아냐? 하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내가 가면 그것이 길이라고도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또 같이 여정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포르치운쿨라 행진을 같이하곤 하였고,
수련자들과 같이 걷곤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쉽고 가까운 길은 혼자 갈 수 있고 혼자 가는 것이 편하다.
그러나 멀고 힘든 길은 혼자 가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엄두를 냈더라도 중도에 포기할 것이다.”
그렇지만 하느님께로 가는, 이 세상에서 저세상으로 가는 파스카의 여정은
혼자 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여럿이 가고 떼로 몰려가도 불가능합니다.
그렇습니다. 파스카 여정은 이 세상 길 떠나듯 떠날 수 없을 것입니다.
한 번 이스라엘의 파스카 여정을 생각해봅시다.
모세 없이 이집트를 떠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모세처럼 하느님께 부르심과 사명 받지 않으면
그 누구도 이집트 곧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아니 하고 떠나야 한다고 얘기하지도 아니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하늘에서 우리에게 오신 분,
우리를 하늘로 데려갈 사명을 가지고 오신 분,
하늘과 우리 사이의 길을 너무도 잘 아시는 분이며
우리의 모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셔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그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몸소 말씀하셨고,
영원한 생명을 찾는 부자 청년에게는 당신을 따르라고 초대하셨고,
제자들에게는 좀 더 강하게 명령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라!”
그런데 이 말씀과 초대와 명령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제 생각에 경청과 응답과 순명이 필요하고
믿음과 사랑이 바탕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파스카 여정을 주님의 말씀을 따라 떠나기 위해서는
주님의 말씀이 옳다는 믿음이 무엇보다 먼저 있어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에게 다른 말들 곧 이설(異說)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날 때도 그리고 여정 중에도
떠나지 말자는 이설과 그만두고 돌아가자는 이설이 많았는데,
그것은 파스카 여정에는 어려움이 많고도 많기 때문입니다.
우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떠나는 것이 어렵고,
가는 중에 부닥치게 되는 어려움도 만만치 않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늘나라가 가야 할 곳이고 갈 수는 있는 것인지
믿음이 흔들리면서 가고자 하는 마음도 흔들리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제게는 십여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제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저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실 때가 되었을 때
그때까지 그렇게 지혜롭던 분이 저의 어머니 같지 않았습니다.
자식들을 두고 떠나는 것 특히 혼자인 저를 두고 떠나는 것이
어머니 뜻대로 되지 않으셨는지 전에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
집착을 그렇게 하시고 수시로 제게 전화를 거시곤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저희를 두고 하느님께로 가시라고 매정하게
어머니를 하느님께 떼밀었는데 그것이 지금까지 마음 아픕니다.
이 매정한 짓을 수도자인 제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리했는데
이제는 제가 저에게도 그 매정한 짓을 해야 하겠지요.
저희 어머니는 저희를 두고 떠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가신 것입니다.
물론 저희를 두고 떠나신 것이지만 하느님께 가기 위해 떠나신 거라는 말이고,
저희 어머니 덕분에 우리 인생 여정은 파스카의 여정을 가는 것이라는 것을,
곧 이 세상에 살다가 하느님께로 가는 것이라는 것을 관념적으로 그리고 막연히
생각하며 지냈는데 마음이 아플 때마다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마음 아픔이 마음 새김입니다.
어머니를 하느님께 떼민 것이 마음 아플 때마다
어머니 가신 그곳으로 저도 따라가야 한다고 마음에 새기는 곧 명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따라가야 하는 것은 어머니가 아니라 주님이십니다.
죽음과 부활의 길을 먼저 가신 주님을 우리는 따라야 하는 겁니다.
그 주님께서 우리에게도 말씀하시고 초대하시고 명령하십니다.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라라.”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라.”
그리고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우리는 매일
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저 위에 있는 것을 선택하고,
다른 이가 아니라 주님을 따르기로 선택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진정한 파스카의 여정을 가게 되고,
기쁘고 행복한 파스카 여정을 가게 됨을 묵상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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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를 지나고 홍해를 건너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우리는 주님을 따라서
파스카 여정을 가야 한다는 묵상을 오늘 저는 했습니다.
왜 이런 묵상을 했냐면 제가 전보다 좀 겸손해졌기 때문입니다.
전엔 겁이 없기 때문인지 또는 너무 자신만만해서인지
그냥 가면 되는 것 아냐? 하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내가 가면 그것이 길이라고도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또 같이 여정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포르치운쿨라 행진을 같이하곤 하였고,
수련자들과 같이 걷곤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쉽고 가까운 길은 혼자 갈 수 있고 혼자 가는 것이 편하다.
그러나 멀고 힘든 길은 혼자 가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엄두를 냈더라도 중도에 포기할 것이다.”
그렇지만 하느님께로 가는, 이 세상에서 저세상으로 가는 파스카의 여정은
혼자 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여럿이 가고 떼로 몰려가도 불가능합니다.
그렇습니다. 파스카 여정은 이 세상 길 떠나듯 떠날 수 없을 것입니다.
한 번 이스라엘의 파스카 여정을 생각해봅시다.
모세 없이 이집트를 떠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모세처럼 하느님께 부르심과 사명 받지 않으면
그 누구도 이집트 곧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아니 하고 떠나야 한다고 얘기하지도 아니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하늘에서 우리에게 오신 분,
우리를 하늘로 데려갈 사명을 가지고 오신 분,
하늘과 우리 사이의 길을 너무도 잘 아시는 분이며
우리의 모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셔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그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몸소 말씀하셨고,
영원한 생명을 찾는 부자 청년에게는 당신을 따르라고 초대하셨고,
제자들에게는 좀 더 강하게 명령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라!”
그런데 이 말씀과 초대와 명령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제 생각에 경청과 응답과 순명이 필요하고
믿음과 사랑이 바탕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파스카 여정을 주님의 말씀을 따라 떠나기 위해서는
주님의 말씀이 옳다는 믿음이 무엇보다 먼저 있어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에게 다른 말들 곧 이설(異說)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날 때도 그리고 여정 중에도
떠나지 말자는 이설과 그만두고 돌아가자는 이설이 많았는데,
그것은 파스카 여정에는 어려움이 많고도 많기 때문입니다.
우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떠나는 것이 어렵고,
가는 중에 부닥치게 되는 어려움도 만만치 않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늘나라가 가야 할 곳이고 갈 수는 있는 것인지
믿음이 흔들리면서 가고자 하는 마음도 흔들리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제게는 십여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제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저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실 때가 되었을 때
그때까지 그렇게 지혜롭던 분이 저의 어머니 같지 않았습니다.
자식들을 두고 떠나는 것 특히 혼자인 저를 두고 떠나는 것이
어머니 뜻대로 되지 않으셨는지 전에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
집착을 그렇게 하시고 수시로 제게 전화를 거시곤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저희를 두고 하느님께로 가시라고 매정하게
어머니를 하느님께 떼밀었는데 그것이 지금까지 마음 아픕니다.
이 매정한 짓을 수도자인 제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리했는데
이제는 제가 저에게도 그 매정한 짓을 해야 하겠지요.
저희 어머니는 저희를 두고 떠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가신 것입니다.
물론 저희를 두고 떠나신 것이지만 하느님께 가기 위해 떠나신 거라는 말이고,
저희 어머니 덕분에 우리 인생 여정은 파스카의 여정을 가는 것이라는 것을,
곧 이 세상에 살다가 하느님께로 가는 것이라는 것을 관념적으로 그리고 막연히
생각하며 지냈는데 마음이 아플 때마다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마음 아픔이 마음 새김입니다.
어머니를 하느님께 떼민 것이 마음 아플 때마다
어머니 가신 그곳으로 저도 따라가야 한다고 마음에 새기는 곧 명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따라가야 하는 것은 어머니가 아니라 주님이십니다.
죽음과 부활의 길을 먼저 가신 주님을 우리는 따라야 하는 겁니다.
그 주님께서 우리에게도 말씀하시고 초대하시고 명령하십니다.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라라.”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라.”
그리고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우리는 매일
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저 위에 있는 것을 선택하고,
다른 이가 아니라 주님을 따르기로 선택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진정한 파스카의 여정을 가게 되고,
기쁘고 행복한 파스카 여정을 가게 됨을 묵상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여러분 가정안에 평화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