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을 보면 즉시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죽어가는 자기 아들에게 주님께서 직접 가달라고 왕실 관리가 조르지만
주님께서는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라는 말로 거절하십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믿고 떠나갔다.”라고 복음은 기술합니다.
그래서 집에 갔더니 병이 나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바로 그 시간에 자기 아들의 병이 나은 것을 확인케 되고,
“그리하여 그와 그의 온 집안이 믿게 되었다.”라고 합니다.
주님 말씀을 믿고 떠났다고 하였는데
나중에 기적을 확인하고 믿게 되었다는 말을 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첫 번째 믿은 것’과
‘두 번째 믿게 된 것’ 사이에 뭔가 차이가 있다는 것인데 그것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많이 생각지 않아도 첫 번째 믿음은 일단 믿기로 한 것이고
두 번째 믿음은 그 믿음이 완성되고 완전해진 믿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믿기로 하는 믿음,
이 믿음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도박으로 치면 믿는 쪽으로 패를 건 겁니다.
그냥 가라는 주님 말씀을 믿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앞에 두고
믿는 쪽으로 의지적인 선택을 한 것인데 그 결과 기적을 체험합니다.
그러므로 그가 믿지 않는 쪽으로 선택한다면
그것은 그 믿음을 싹부터 잘라버리는 겁니다.
우리의 믿음도 이토록 믿기로 하는 것에서 시작되는데
그 믿음은 아직 불완전하고 믿음의 싹에 불과합니다.
그래도 이 믿음의 싹이 중요하고,
이 믿음의 싹은 자기 믿음이 완전해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의 온 집안이 믿게 되는 것으로 완전해지고 더 확장됩니다.
나무로 치면 믿음의 작은 싹이 나무로 자라고,
한 나무로 그치지 않고 군락을 이루게 된 것과 같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오늘 이 이야기에서
의지적 믿음과 체험적 믿음의 관계를 볼 수 있고,
의지적 믿음의 그 작은 싹이 이후 체험들을 통해
나무로 성장하고 완전해져야 한다는 것을 배웁니다.
겨자씨 같은 믿음이 큰 나무로 자란다는 말씀이
이 말씀이 아닐까 묵상하게 되는 오늘 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