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97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다섯째 날: 수줍어하는 수사슴을 보기

겸손은 영성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한 마리의 수줍어하는 수사슴과 같다. 당신이 자신의 선물들을 과대 혹은 과소평가하거나 어떤 식으로 다른 이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자아를 강화시킬 때, 이런 자신을 알아차리도록 하는 방법들은 어떤 것이 있는가? (다음을 기억하라.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겸손이 아니다. 겸손은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도록 돕는다. 그래서 우리 자신을 내세우거나 우리의 선물들의 혜택을 어떤 이도 받지 못하도록 숨기도록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게 한다.)

 

첨언) 우리가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지만 자기가 이를 알아차리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죄책감에 빠져 있거나 자기를 못난 이라고 여기는 순간들이 자기를 과소평가하는 순간들입니다.

이것과 대조적으로 자신을 과대평가할 때, 자신은 이를 쉽게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특히 옳다고 여겨지는 것과 공동체를 위한다는 것에 매여 있을 때에 그러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옳음에 빠져 있을 때, 나는 통합적으로 나를 보지 못하고 나의 부분을 봅니다. 그리고 다른 이의 부분만을 보고 판단하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프란치스코는 참되고 완전한 기쁨에서 수도회에 유능하고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들어온다고 그것이 자기에게 참 기쁨이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자신을 그리고 자기가 속한 무리를 과대평가하는 이라면, 이것을 대단한 영광으로 여길 것입니다. 오히려 프란치스코는 자기가 당하는 무시와 외면 가운데에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리스도의 평화로 넘어갈 때, 자기에게 진정 기쁨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전환은 하느님과 함께하는 응답을 할 때 가능하고 이 가운데 하느님을 맛볼 수 있습니다. 이 순간은 자기를 있는 그대로, 그리고 하느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일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또 다른 순간은, 우리가 표면적으로 무언가에 집중하고 매여 있을 때입니다. 형제들과 사람들이 성인으로 여기는 한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밤낮으로 기도에 열중하고 거룩한 삶을 사는 형제였습니다. 그 형제는 침묵을 지킨다는 명목하에, 가끔 고해성사를 할 때에도 말로 하지 않고 몸짓으로 할 정도로 침묵을 엄격하게 지켰습니다. 프란치스코 이 형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의 이런 열심을 이렇게 읽어내었습니다. “이는 자기 죄를 고백하지 않기 위한 마귀의 유혹입니다.” 프란치스코는 장상에게 그 형제에게 고해성사를 말로 보게 하라고 조언을 했었습니다. 그 형제는 이 장상의 말을 따르지 않았고, 수도회를 떠나갔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천하고 무식하며 멸시받을 자로 취급받을 때와 마찬가지로, 칭찬과 높임을 받을 때에도 자기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종은 복됩니다. 사실, 인간은 하느님 앞에 있는 그대로이지 그 이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권고 19. 하느님의 겸손한 종)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자유나눔 게시판

자유롭게 글을 남겨주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808 십자가 위의 일곱 말씀 십자가 위의 일곱 말씀   파스카 신비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 믿음의 길 가톨릭 신앙에서 가상칠언은 단순한 죽음의 마지막 말씀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이 인간... 이마르첼리노M 2026.04.03 151
1807 에고의 죽음은 최후 만찬과 예수님의 죽음의 신비에 참여하는 사건 에고의 죽음은 최후 만찬과 예수님의 죽음의 신비에 참여하는 사건   인간의 영적 여정 안에서 일어나는 에고의 죽음은 단순한 심리적 과정이 아니라, 최후의 만... 이마르첼리노M 2026.04.02 83
1806 부활의 빛 안에서 드리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 부활의 빛 안에서 드리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서는 침묵 속에서도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서도 ... 이마르첼리노M 2026.04.01 240
1805 대사제의 기도와 우리 신앙의 현주소 1. 대사제의 기도와 우리 신앙의 현주소 1. 프란치스칸 영성의 흐름 안에서 다시 읽는 요한복음 17장   수난의 문턱에 서 계신 예수님께서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들... 이마르첼리노M 2026.03.30 169
1804 영원에서 시작된 구원과 생명의 길 영원에서 시작된 구원과 생명의 길   “하느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미리 정하셨고 이 마지막 때에 여러분을 위해서 그분을 세상에 ... 이마르첼리노M 2026.03.29 206
1803 믿음은 도전입니다. 믿음은 도전입니다.   이제까지 너무도 확실하다고 여기며 살아온 세속적 가치들에 맞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를 선택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 이마르첼리노M 2026.03.28 158
1802 보이지 않는 결 보이지 않는 결   사람은 종종 자신이 가진 그림자를 사물과 타인의 얼굴 위에 덧씌웁니다. 그것을 모르고 자신이 옳다고 믿으며 심리의 주도권을 움켜쥔 채 조... 이마르첼리노M 2026.03.27 187
1801 삶이 생각을 바꿉니다. 삶이 생각을 바꿉니다.   우리는 흔히 생각이 사람을 바꾼다고 믿습니다. 더 바른 사상, 더 깊은 깨달음, 더 정교한 이론이 삶을 새롭게 만들 것이라 여깁니다. ... 이마르첼리노M 2026.03.26 171
1800 비천함 속에 피어난 지고한 사랑 비천함 속에 피어난 지고한 사랑   하늘이 스스로 낮아져 땅의 문지방을 넘던 날, 천사의 인사는 화려한 궁정의 휘장 사이가 아니라 이름 없이 가난한 한 처녀의... 이마르첼리노M 2026.03.25 199
1799 내면의 충만함 내면의 충만함   이미 우리 안에 있는 사랑으로의 회귀는 내면의 충만을 살기 위한 심오한 방법입니다. 우리는 자주 바깥을 향해 손을 뻗으며 살아갑니다. 더 많... 이마르첼리노M 2026.03.24 183
1798 불완전함과 실패 속에서 만나는 하느님 불완전함과 실패 속에서 만나는 하느님   신앙의 역설, 역설의 복음, 나는 불완전함과 실패 속에서 만나는 하느님을 뒤늦게 배웠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하느님께... 이마르첼리노M 2026.03.20 201
1797 작은자의 영성 작은자의 영성   작은 자의 길은 세상의 길과 반대로 흐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올라가라고 말하지만, 이 길은 내려가라고 초대합니다. 세상은 더 많이 가지라... 이마르첼리노M 2026.03.19 185
1796 거룩한 추락과 비움의 신비 거룩한 추락과 비움의 신비   우리는 상실을 두려워합니다.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은 곧 나 자신이 줄어드는 일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손에서 빠져나가는 것들을 ... 이마르첼리노M 2026.03.18 231
1795 봄비 내리는 아침 봄비 내리는 아침 싱그러운 아침, 적당히 젖은 대지의 가슴이 연한 연두빛 숨결을 품었습니다. 그 품 안에서 하얀 매화꽃은 수줍은 첫사랑처럼 피어납니다. 연분... 이마르첼리노M 2026.03.18 167
1794 전쟁의 한 가운데서 비움으로 얻는 생명의 길 전쟁의 한 가운데서 비움으로 얻는 생명의 길   내적 가난의 신비속에서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희망이 되는 소식은 없을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미... 이마르첼리노M 2026.03.18 171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 124 Next ›
/ 124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