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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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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단식과 자선에 대한 새로운 이해

 

“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마르 1,15)

 

 

교회 전통 안에서 회개는 기도와 단식과 자선을 실행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그러나 회개를 금욕하라는 것으로만 이해한 나머지 복음의 가르침과 다르게 알아듣거나 거리가 있게 되었습니다. 희생하고 극기하고 더 많은 양의 기도문을 바치는 것을 회개라고 생각한 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회개는 짐스러운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회개는 상상할 수 없는 기쁨으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하느님 나라의 행복을 지금 여기서 누리도록 이끌어 주기 때문입니다.

 

기도

기도에 대해서 말할 때마다 기도문을 더 많이 암송하라는 뜻으로 알아듣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우리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으로 시작하여 하느님께서 나를 어떻게 돌보고 계시는 가를 아는 시간이며 그러한 돌보심에 내가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사랑받음에 대한 앎과 응답하고 있는 실재를 아는 시간입니다.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마태 6,7-8)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마태 6, 31-33)

 

 

단식

단식은 단순히 밥을 굶는 것이라기보다 나를 포기하는 가난과 겸손에 이르게 하는 내적 죽음의 시간입니다. 단식은 내려가고 내려놓고 허용하고 놓아주는 내면의 죽음을 통해 하느님과 나와, 너와 나와, 피조물과 나 사이에 흐르는 생명의 에너지를 공급받도록 하는 치유의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로 인하여 막히고 끊긴 수로를 다시 연결하는 복구의 현장입니다. 이러한 내면의 죽음이 없이는 하느님과 너와 피조물을 받아들일 공간이 없습니다.

 

이사야서에 나타난 단식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네가 네 가운데에서 멍에와 삿대질과 나쁜 말을 치워 버린다면, 고생하는 이의 넋을 흡족하게 해 준다면 네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고 암흑이 너에게는 대낮처럼 되리라.

(이사야 58,4-12)

 

자선

관계 안에서 발견하게 된 너의 필요성을 채워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자유를 주는 법으로 관계를 돌보는 일로써 허물어진 관계, 단절된 관계를 풀어내어 하느님의 자비와 선하심이 너에게 흘러가도록 돕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와 단식과 자선은 따로 분리해서는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회개의 과정은 이 세 가지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통합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하느님과 실제로 적용되는 하느님 상(像)은 공생하는 관계에서 살아있게 만드는 “내어주는 몸과 쏟는 피”로써 구체화 됩니다. 장차 되어야 할 내 모습과 현재의 나와는 거리가 있고 그 거리를 얼마나 가깝게 만드느냐? 하는 것은, 예수님을 닮고 따르기 위하여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깊이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랑하고 용서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사랑하고 용서하시는 하느님과 만납니다.

 

나밖에 모르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편 가르기와 관계의 단절로 인하여 냉소적인 사람이 되어갑니다. 누가 맞고 누가 틀렸는가만 따지고 율법과 도덕적 판단으로 사람들을 심판하는 데 그 기준이 바로 자신의 자와 저울로 그렇게 합니다. 자신이 차지한 꼭대기의 자리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하여 경쟁하고 비교하고 높이고 헐뜯습니다.

 

기도와 단식과 자선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형식과 체면과 자존심이라는 겉껍질을 벗게 해 줍니다. 골방에서 기도하고, 머리에 기름을 발라 단식을 감추고, 한 손이 하는 일을 다른 손이 모르게 감추라고 하시는 자선에 대한 가르침은 우리 마음을 보시는 하느님 앞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일깨워 주십니다.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포장했던 내면을 고발하시는 예수님 앞에 항복을 선언하고 다시 시작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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