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에 일을 해서는 안 되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었습니다.
그것이 십계명을 어기는 것임을 알았지만
배가 고픈 나머지
밀 이삭을 뜯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유다인들에게 계명을 지키는 것은
생명을 얻고 그 생명을 누리는 것과
연결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잘 지키면
오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계명을 지키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즉 계명은 지키기 위한 규정이 아니라
생명을 얻어 누리는 방법이었습니다.
지금 제자들을 보면
배가 고파서 어쩔 수 없는 상황입니다.
즉 밀 이삭이라도 먹지 않으면
걸을 힘조차 없었습니다.
생명을 유지하기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두 상황 모두
계명을 지키는 것과 밀 이삭을 먹는 것 모두
생명을 위한 행동입니다.
하지만 방식을 보면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굶어야 하고
이삭을 먹으려면 계명을 어겨야 합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이삭을 먹는 것을 선택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리사이들의 생각
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잘못된 것처럼 지적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것 때문에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마음을 먹기도 했습니다.
두 방식은 정말 모순되는 것일까요?
인간은 먹지 않으면 죽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 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밀 이삭을 먹는 것을 선택하신 것은
제자들이 인간임을 인정하신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들은 인간이기에 먹어야 합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은 영적인 방식이고
이삭을 먹는 것은 육적인 방식이라고
구분하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게 영과 육을 구분하는 것은
단순한 구분이 아니라
육적인 방식을 거부하는
좋지 않은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당신과 관계를 맺고 싶어하시지
인간적인 모습을 뛰어넘어서
소위 말하는 고상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싶어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한 인간으로 인정하시며
그래서 인간적인 모습, 배고픔을
잘못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즉 우리가 인간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면서
하느님과 관계를 맺는 것이
하느님의 말씀을 올바로 지키는 방식입니다.
밀 이삭을 먹는 것이
좁게는 안식일 법을 어기는 행동으로 보이지만
넓게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행동입니다.
결국 밀 이삭을 먹는 것과
하느님의 말씀인 계명을 지키는 것은
모순되지 않습니다.
신앙 생활에서
육적인 부분, 인간적인 부분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그것을 큰 잘못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너무 세상적인 것으로 치우치는 것도 좋지 않지만
적당한 수면과 적당한 식사가
함께하는 기도생활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