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두가이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주장에 예수님께서는
부활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과 더불어
부활을 하느님과 연결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살아있는 모든 이의 하느님이라고 설명하시면서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항상 계시는 분입니다.
그 말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항상 계시는 분이시기에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항상 살아있는 존재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놀랍게 느껴집니다.
물론 육체의 죽음을 거부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부활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육체의 죽음을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육체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끝나지 않는 이유가
하느님께서 영원히 계시는 분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하느님과 인간의 모습을
비슷하다고 설명하십니다.
비록 육체의 죽음을 맞이할지라도
하느님 앞에서는 영원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의 능력으로 영원히 살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영원성은
하느님에게서 올 것입니다.
즉 우리는 하느님의 속성을 받은 존재입니다.
창조 때에 하느님의 숨결을 받았기 때문에
하느님의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우리 육체의 죽음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하느님을 거부하면서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는 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부활이 없다는 주장 속에는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기에
이 세상의 삶을 제멋대로 살아도 된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제멋대로라는 것은
내 마음대로 산다는 것이며
그 안에는 하느님을 안중에도 두지 않겠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부활까지 멀리 보지는 못하더라도
나의 삶 속에서 나의 의견만을 주장하면서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