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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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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내려놓음의(Letting go) 영성

우리가 삶의 다른 단계들을 통과할 때나 삶의 자연적이지만 예견하지 못한 모퉁이를 돌도록 초대되었을 때, 새로운 관점에 열려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새로운 관점에 열려 있기는 쉽지 않은데, 습관이나 두려움이나 과거의 아픈 경험 때문이다. 릴리 톰린은 다음 구절을 외치곤 하였다. “용서는 좋아 보이는 과거의 모든 희망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내려놓음(letting go)은 우리 안의 좋은 곳에서 나오지 않은 감정이나 반응에 의지함을 의미한다. 한 심리치료사이자 수도자인 이가 나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나누어주었다. “내가 협소해지려고 하는 혹은 인색해지려고 하는 마음의 유혹을 받는 자신을 볼 때, 나는 보다 나은 자기를 만나게 해주는 나의 마음을 넓히는 초대를 상기한다. 보다 나은 자기는 더 열려 있는 자기이고 어려움을 거부하지 않는 자기이고 세상을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이라는 극단으로 보지 않는 자기이다. 보다 나은 자기는 삶에서 더 풍요롭고 더 미묘한 차이가 있는 경험에 대해 수용적이다.

내려놓음은 종종 저항을 일으키는데, 우리가 보다 큰 무엇을 얻기보다는 무언가를 잃을 것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가 내려놓을 때, 우리는 더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는 내적 자유를 얻는다. 우리가 움켜질 때, 우리는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놓쳐버릴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의 것이나 한 사람에게 과하게 중심을 두기 때문이다. 흥미있는 책 제목 굽은 오이의 저자 데이비드 채드윅은 한 수도승에 대한 이야를 한다. 그 수도승은 아름다운 도자기 한 점을 열심히 바라보고 있었고, 그의 수도원장은 그에게 간음하는 것을 멈추어라는 말을 하였다. 그 수도원에는 어떤 여인도 없었기에 그 수도승이 성적으로 문란하다고 말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그 수도승이 아름다운 피조물을 보고 감탄하며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로 그 도자기에 매여 있다는 것이다. 안토니 드멜로는 이것을 다음과 같은 식으로 표현한다.

당신이 주의깊게 바라본다면, 당신은 하나가 있음을, 불행을 일으키는 오직 하나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의 이름은 집착이다. 집착이 무엇인가? 어떤 특정한 것이나 특정인 없이 네가 행복할 수 없다는 믿음에서 생겨난 매인 감정의 상태이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사람이나 사물이나 삶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즐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우리가 이타적인 업적을 공경하는 이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것들을 온전히 끌어안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들은 그 선물에 매이지 않으며, 자신이 더 이상 섬길 수 없다고 느끼지도 않고, 그 자신의 행복을 위한 값으로 삶에서 무언가를 가져야 한다고도 느끼지 않는다.

우리는 의견이나 습관들을 내려놓을 수도 있다. 우리가 이 영역에서 내려놓기를 하기 위해서는, 기도하는 마음과 멀리 내다보며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영적 인식이 필요하다. 사물이나 사건들은 그것이 보여지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한번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해외 기자 클럽 안에서, 나는 한 테이블에 앉아 메콩강을 바라보며 평화로움과 무한함을 느꼈다. 그런데 곧 정오의 열기가 끓어오르자, 식당 주인은 바람이 들어오도록 반대편 블라이드 창을 열었다. 나는 그 방향으로 도시의 깊은 빌딩들의 오랜 벽들을 볼 수 있었다. 그 벽들은 크메르루주 시기부터 있었던 총알 구멍 자국들이 그대로 있었다. 어떤 장면이 진짜이었는가? 양쪽 모두가 진짜이었다.

우리가 내려놓음을 하며 새로운 자세와 가능성과 사건들과 경험들과 다른 것을(심지어 자기를) 더 넓게 바라봄을 만난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삶의 불확실하고 우중충한 영역들로 기꺼이 들어갈 것이다. 만약 우리가 내려놓으며 더 큰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영적이고 심리적인 영역들 안에서이다.

필립 사이먼스는 루케릭병으로 알려진 ALS에 걸린 후 그의 책 ‘Learning to Fall(넘어지는 법 배우기)’에서 병과 관련하여 더 궁극적인 내려놓음의 경험에 대해 말한다.

나는 더 이상 높은 산등성이를 오를 수 없으나, 산 도로 옆에 나의 휠체어를 꺼내어 발삼 전나무 향을 맡을 수 있다고 나에게 말한다. 이것은 생각의 문제라고 우리는 말하고 싶어한다. (달팽이가 거북이 등을 오르고 무엇이라 말할까? 야호!) 나는 고생하며 이를 배웠었고, 그와 같은 말이 제공하는 안도감은 초코렛을 먹고 나면 빨리 기분은 좋지만 이후 과민해지고 우울해지는 경험을 닮았다는 것이다. 내가 만난 더 도움이 되는 접근법은 더 어려운 것이다. 이것은 역설로부터 생겨나는데, 우리는 언젠가는 모든 것을 잃을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임으로 상실을 더 풍요롭게 만날 수 있다. 넘어지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우리가 평소에 소중한 것을(우리의 성취들, 계획들,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 그리고 자아까지) 움켜잡는 움직임을 내려놓음으로 더 심오한 자유를 만나는 것이다. 삶을 내려놓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삶에로 더 온전히 들어갈 수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알려준 핵심 영적 가르침 중의 하나이다. “누구든지 목숨을 구하려는 이는 목숨을 잃을 것이다. 하지만 나 때문에 목숨을 내려놓는 이는 목숨을 얻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와 어떻게 우리가 자유의 삶을 사는가’(우리가 움켜잡으려 하지 않고 즐기는 것이고 모으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는 개인의 내적 양성이 도달할 성숙도의 많은 것을 결정할 것이다.

 

첨언) 프란치스코는 가난을 사랑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가 사랑한 가난은 물질적으로 소유하지 않는 가난을 넘어섭니다. 프란치스코의 가난을 통합적인 가난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예로, 우리들은 그가 속화된 사제에 대해 보였던 자세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당시 복음적 가난을 추구하던 이들은 자기들은 가난을 추구하며 예수님을 따른다고 생각했고, 추잡한 사제들을 보면 경멸했고 그들이 거행하는 성사는 효과가 없다고까지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교도권에 의해 이단으로 단죄받았습니다.

그런데 프란치스코는 회개 초기부터 생애 말년까지 세속적 사제들에게 순종했습니다. 그는 유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그들 안에서 죄를 보고 싶지 않고, 사제들을 존경하기를 원합니다.) 내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사제 자신들도 받아 모시고 사제들만이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 주는 주님의 지극히 거룩한 몸과 피가 아니고서는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지극히 높으신 아들을 내 육신의 눈으로 결코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는 속화된 사제들 안에서도 활동하시는 하느님을 바라보았고, 하느님을 만나곤 하였습니다.

우리들은 악해보이거나 죄스러워 보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접근합니까? 그것 자체를 악하다고 여기며 그것 전체를 없애버리려 하지는 않나요? 악해보이는 것이 일어나지 않도록 너와 나의 삶을 통제하지는 않나요? 아니면 그 반대로 악해보이는 것 이면에 자리한 선을 바라보며 그 선이 피어나도록 하는가요? 이면을 바라본다는 것은 나에게 명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면에서 선이 일어나도록 한다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것(나의 판단과 기준, 심지어 나)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는 어떠했을까요? 하느님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는데, 그에게 다가온 처참한 죽음 앞에서, 예수님은 악을 바라보고 절망하였을까요? 아니면 악이 전부인 것 같은 그 상황 속에서도 한 가닥의 선의 빛을 향해 자기를 열어젖혔을까요? 저는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악의 상황에서 활동하시는 선한 하느님을 향해 자신을 내어놓았습니다.

프란치스코의 통합적인 가난은 가난하게 살면서 속화된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하느님을 섬긴다는 우월감을 얻거나 구원을 보장받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과 아드님 그리고 하느님의 영이 가난하기에 그 가난에 거처를 내어드리는 가난입니다. 가난이신 삼위의 하느님이 피어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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