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83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2: 잃어버린 사막 교부의 덕을 다시 회복하기

내 딸과 사위 그리고 두 손녀들과 함께 저녁 식탁에 앉았다. 식사가 끝나자 내 딸이 손녀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오늘 너희들은 무엇을 했던 것이 좋았니? 다른 말로 하면, 너희들은 하느님이 주신 어떤 선물들로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었니?”

손녀들은 이런 종류의 질문들을 좋아했고, (현대 긍정 심리학에서 말하는 감정들의(signature strengths)’ 꽤 긴 목록들을 이야기했다. 손녀들을 답을 들은 사위는 그러면 겸손은 어때? 너희들은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어?” 작은 손녀 에밀리가 겸손이 무엇인지?” 물었다. 사위는 그렇게 젊은 세대가 아니기에 컴퓨터가 정보의 유일한 원천은 아니었다. 사위는 그래 사전을 가져와서 그것이 무엇인지 찾아볼까?”라고 대답했다. 작은 손녀가 달려가 사전을 가지고 와서 아빠에게 건네주었다. 사위는 겸손도입부를 찾아 그 정의를 크게 읽고 물었다. “너희들은 이 설명을 듣고 누가 떠올랐니?” 손녀들과 그들의 엄마는 즉각적으로 힘차게, “할머니라며 나의 부인을 말했다. 사위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어때?” 그들은 머리를 흔들며, “할아버지는 아냐!”

우리가 영적인 삶에 많은 가치를 두더라도, 겸손이라는 덕은 파악하기 어려운데, 특히 할아버지들이나 남성들에게 그러하다. 우리는 매일 겸손을 찾아야 하는데, 이것은 개인적 영적 양성이 자라는 (soil)’이기 때문이다. 겸손이 아니고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겸손 없다면, 우리는 실재 이 세상에서 발을 디디고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실재에도 불구하고, 겸손은 오늘 그렇게 빈번히 보이지는 않는다. 프란치스코 교종의 선출은 많은 가톨릭 신자들에게 (자신을 보수적이라고 말하는 이나, 중도라고, 혹은 진보라고 보는 이들 대부분에게) 기쁨을 주었는데, 그 이유가 바로 교종의 겸손 때문이라고 저자는 생각한다. 진정한 겸손은 지각할 수 있는 거룩함인데, 우리가 다른 이에게서나 나에게서 이 겸손의 영을 만날 때에 거룩함을 경험한다.

 겸손이 우리 영적 여정의 중심이라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당신이 지식을 가지고 있고 여기에 겸손을 더하면 당신은 지혜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당신이 이 지혜에 연민을 더하면, 당신은 사랑에 이르게 되고 사랑이신 하느님과 하나가 된다.

이것을 아는 것은 하나의 도전인데, 그 이유는 겸손은 직접적으로 추구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이기심에서 시작하거나 자기 존재감을 쫓는 것이다. 겸손은 하느님에 의해 조건없이 주어지는 선물이다. 그런데 이것은 겸손이 자라는 밭에 대해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우리가 이 선물을 기다리고 소중하게 여기는 다음과 같은 방법들은 있다.

- 어떤 것에 관해 우리 자신을 타인보다 낫게, 혹은 못나게 비교한 순간들을 떠올려 보시오. 우리 자신을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하지 않을 때, 삶은 더 기뻐진다. 그리고 겸손의 열매는 평정심 가운데 우리의 달란트를 인식하게 우리가 한 단계 성장한 순간을 알아차리게 한다.

- (우리가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해도) 우리의 성공에 다른 이가 얼마나 공헌했는지 느껴보라. 어떤 성공도 진공 상태에서 혼자서는 이룰 수 없다.

- 우리 자신과 우리의 업적과 우리가 가진 바에 관심을 기울였던 때를 주의하라. 이 순간은 우리가 받은 것에 감사를 표현하지 않고, 우리의 우월성을 표현하는 때이다.

- 우리가 다른 이를 이용하거나 경멸하거나 놀리려 하는 유혹에 주의하라.

 이러한 방법들은 우리 자신과 삶을 전체적으로 투명하게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게 하는 몇 가지 간단한 조치들이다. 겸손은 삶을 더 맛갈지게 하며 지침없이 삶을 살아가게 하는 영적 자양분이다. 또한 겸손은 건강한 자존감을 지니게 하는 심리적 능력과 연결되어 있다. 겸손은 한편으로 자기를 과대평가 하는 것과 다른 한편으로 자신을 지나치게 의심하게 하는 것을 피하도록 돕는다. 겸손은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렌즈를 깨끗하게 하여 우리 자신이 받은 선물들을 누리도록 하며 그것을 다른 이와 조건없이 나누도록 한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우리가 받은 것을 누리며, 하느님이 다른 것들은 돌보시도록 허용한다.

 첨언) 프란치스코는 하느님에 대해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당신은 겸손이시나이다.” 당시 중세 계급사회에서 하느님은 높으신 분, 하느님은 전능하신 분이라는 고백은 만연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이 겸손이고, 겸손의 방식으로 당신의 드러내신다는 말은 하느님에 대한 경험이 없이는 할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가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묵상과 일상 안에서 그리스도와의 만남에서 기인한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프란치스코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묵상하며, “오 겸손의 극치! 극치의 겸손이여!”라고 외치며, 그리스도를 통한 겸손의 하느님의 선의 세계의 좋음에 잠길 수 있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비슷한 표현을 성체성사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어좌로부터 동정녀의 태중으로 오신 때와 같이 매일 당신 자신을 낮추십니다. 그분은 겸손한 모습으로 매일 우리에게 오십니다.” 프란치스코는 공생활 중인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그리스도에게서도 겸손을 읽어내며 그 그리스도가 그의 마음을 채우도록 하며, 그에 따라 그리스도의 마음이 아버지 마음으로 채워지듯이 그의 마음 또한 아버지 하느님의 마음으로 채워졌을 것입니다.

프란치스코는 나환자와의 만남을 그의 회개의 시점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만남 전에, 프란치스코는 나환자를 보면,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두려움, 싫어함 등의 마음만이 자기 마음으로만 알아차리고 그 마음을 없애기 위해 나환자를 피하였습니다. 그런데 나환자의 결정적인 만남에서는 그 마음 안에 작게(겸손하게) 감추어진 하느님 마음의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프란치스코는 그 작은(겸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나의 큰 마음이 아니라 작은 나와 함께하는 하느님 마음을 선택합니다. 그러자 그는 새로운 실재를 만나게 됩니다. 그동안 그렇게 쓴맛으로만 여겨졌던 것이 단맛으로 변하였습니다. 관계성 안에서 죽음만을 경험하던 나환자가 생동감을 얻게 되고, 프란치스코 또한 자기 안의 영이 살아나는 맛을 경험하였습니다. 겸손의 하느님과 하나되는 호흡과 움직임을 하면서 만났던 새로운 세계였습니다. 이런 경험 후에 그는 세상적 흐름이 아닌, 하느님과 함께 호흡하고 하느님의 흐름을 살아갔습니다.

우리는 안에도 프란치스코를 움직였던 그 작은 마음은 이미 있습니다. 그 마음을 바라보며 그 마음과 하나되는 호흡과 그 마음이 나를 통해 잉태되고 낳음을 받도록 한다면, 우리 하느님의(겸손의) 세계를 만나고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자유나눔 게시판

자유롭게 글을 남겨주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657 존재의 비밀을 배워라. 존재의 비밀을 배워라.   안다고 주장하며 모르기를 거부하는 자, 그는 맨홀 위를 걷는 외줄타기 곡예사. 단단히 닫힌 쇳덩이 아래, 무의식의 심연을 가린 채 스... 이마르첼리노M 2025.09.06 406
1656 성지순례를 떠나는 이들에게 성지순례를 떠나는 이들에게   성지순례 준비모임 (목포형제회, 전주서학형제회) 2025, 9, 7. 14시 장성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순례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성 ... 이마르첼리노M 2025.09.05 535
1655 내가 나에게 반하게 하는 그릇된 신념을 넘어 내가 나에게 반하게 하는 그릇된 신념을 넘어   신념윤리 신념윤리는 행위의 결과나 효용성보다는 행위를 하게 된 동기나 신념, 즉 행위자 내면의 순수한 의도를... 이마르첼리노M 2025.09.03 458
1654 예수님의 메시아적 사명과 우리의 사명 예수님의 메시아적 사명과 우리의 사명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 이마르첼리노M 2025.09.01 417
1653 새로 태어나는 삶 2/2 (성전정화) 새로 태어나는 삶 2/2 (성전정화) 성프란치스코는 산다미아노 성당의 십자가로부터 &quot;허물어져 가는 내 집을 고쳐라&quot;는 말씀을 들었다고 말합니다. 프란치스칸들... 이마르첼리노M 2025.08.30 404
1652 새로 태어나는 삶 1/2 (성전 정화) 새로 태어나는 삶 1/2 (성전 정화)   “성전 뜰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장사꾼들과 환금상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밧줄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를 모... 이마르첼리노M 2025.08.29 390
1651 새로태어나는 삶 1 믿음의 기초 새로 태어나는 삶 1. 믿음의 기초   “정말 잘 들어두어라.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아니하면 아무도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요한 3,3)   “여러분은 이 세상... 이마르첼리노M 2025.08.28 416
1650 신심을 위주로하는 신앙생활의 위험 신심을 위주로하는 신앙생활의 위험   복음 말씀을 중심으로 예수님을 따르기보다 신심 위주의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여러 위험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 이마르첼리노M 2025.08.24 450
1649 보이기 위한 동기를 멈추는 것, 믿음의 출발 보이기 위한 동기를 멈추는 것, 믿음의 출발   오늘 복음은 바리사이와 율법 교사들의 위선을 질책하시는 말씀입니다. 말만하고 행동하지 않는 그들의 마음은 ‘... 이마르첼리노M 2025.08.23 404
1648 가을의 문턱에서 가을의 문턱에서   저만치 물러서는 여름의 등 뒤로 가만히 손 내밀어 붙잡아보니 따스했던 공기 한 자락 아쉬움처럼 손끝에 감도네.   이제는 쨍한 햇살 대신 ... 이마르첼리노M 2025.08.23 492
1647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복음에서 율법교사는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인지 묻습니다. 예수님은 율법과 예언서의 핵심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말... 김상욱요셉 2025.08.22 400
1646 가만히 들어보세요. 가만히 들어보세요.   가만히 들으면 들려요 9월이 오는 소리 가을이 오는 소리   태양은 질펀하고 흥건하게 열을 뿜어냈어도 가을은 소리 없이 다가와 벌써 내 ... 이마르첼리노M 2025.08.21 433
1645 자만심이라는 우상을 아시나요? 자만심이라는 우상을 아시나요?   자만심이 불러온 종교심은 철저하게 인과 응보적입니다. 우상의 실재를 경험하게 하는 세속적 가치들은 모든 가치의 중심에 나... 이마르첼리노M 2025.08.20 444
1644 사랑이 커지면 사랑이 커지면   사랑과 고통은 하나의 길 사랑이 머물던 자리에 고통이 둥지를 튼다.   피하지 못하는 아픔이 나의 맨몸을 파고들 때 비로소 깨닫는다. 사랑과 ... 이마르첼리노M 2025.08.18 403
1643 흔들리지 않는 신앙으로 나아가려는 모든 이에게 … 흔들리지 않는 신앙으로 나아가려는  모든 이에게 …   프란치스칸 신학자 리처드 로어의 신학적 통찰   리처드 로어가 영적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이단적 신학은 ... 이마르첼리노M 2025.08.17 477
Board Pagination ‹ Prev 1 ... 5 6 7 8 9 10 11 12 13 14 ... 120 Next ›
/ 120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