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살리려는 의지와 살려는 의지>
어제 신앙의지와 불신의지에 대해서 나눔을 하였습니다.
오늘은 살리려는 하느님 의지와 살려는 우리 의지에 대해서 보고자 합니다.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는 오늘 주님 말씀에서
우리를 살리시려는 주님의 강력한 의지를 봅니다.
이런 주님의 의지에 대해 살려는 우리의 의지는 어떻습니까?
살려는 의지가 우리에게 진정 있습니까?
그런데 이 질문을 하면서 우리는 생각 좀 해봐야겠습니다.
왜냐면 살려는 의지가 어떤 의지인지 숙고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라는 말이 있듯이
사실 산다고 다 사는 게 아닙니다.
목숨이 붙어 있으니 그저 사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죽음의 그림자를 보며 하루하루 두려워 떨며 사는 사람도 있는데,
이런 사람의 삶은 사실 살더라도 사는 거라고 할 수 없을 겁니다.
이런 뜻에서 볼 때 살려는 의지도
죽지 못해서 살던 사람이 이제 삶의 의욕을 갖게 되었다거나,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 삶의 애착을 갖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닐 겁니다.
진정한 의미의 살려는 의지는
살리려는 주님의 의지에 부응하는 우리의 살려는 의지입니다.
그렇다면 그 의지는 어떤 의지입니까?
첫 째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삶의 의지입니다.
죽음이 두려워 살려고 하는 의지가 아니라
죽음도 두렵지 않은 삶을 살려고 하는 의지입니다.
제 주변에 암 투병을 하는 분이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투병이라는 말을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암을 이겨낸 사람들이 많이 얘기하듯
병과 싸우지 말고 친구처럼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도 있지만
병을 향하지 말고 생명을 향해야 한다는 뜻에서입니다.
병은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지향하고 생명을 얻음으로써 이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주시는 분임을 믿는 것,
생명을 주시려는 하느님의 의지에 부응하여 우리가 생명을 얻으려는 것,
이것이 우리의 진정한 살려는 의지입니다.
둘째 이 세상 삶이 아니라 영원한 삶을 살고자 하는 의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자 하십니다.
그런데 영원한 생명이란
이 세상 삶이 끝나고 시작되는 것으로 생각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이 세상 삶이 끝나고 시작되는 게 아니라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을 버리는 순간,
그 순간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며
이 세상에서부터 시작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려는 마음을 버리는 순간부터
영원한 생명은 시작되고 이 세상에서부터 시작되는 겁니다.
세상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집착을 버릴 때,
그때부터는 순간에서 영원이 시작되고
이 세상에서부터 영원이 시작되며
순간에 영원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