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한 사람과 함께 사는 사람의 고통,
사랑의 사람과 함께 사는 사람의 불행,
저는 이 문제를 오늘의 토빗기를 가지고 묵상하려고 합니다.
토빗기는 선행한 토빗에게 고통이 또 닥치는 것으로 얘기를 전개합니다.
그것도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로 고통을 받게 됩니다.
토빗은 어찌하여 새가 똥을 누는 곳에 가서 눕고
하필이면 새 똥으로 인해 눈이 멀게 되는 겁니까?
이것은 인간의 악행으로 고통받는 것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지요.
새 똥 때문에 눈이 멀었다면 하느님께서 멀게 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토빗의 선행에 하느님께서 상으로 보답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앙갚음하듯이 하느님께서는 악으로 갚아주신 셈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생각게 됩니다.
이것으로 토빗은 불행해졌을까요?
제 생각에 토빗이 고통과 불편을 느꼈을지언정 불행해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오늘 우리가 보기에는 불행한 사건을 겪었는데도
그는 아무에게도 원망하지 않고 고통에 신음하지도 않습니다.
내가 이렇게 평생 선행을 하며 살았는데 그 대가가 이거냐고
하느님께 원망을 퍼붓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참사랑과 참 행복으로 선행을 한 사람에게는
고통은 있을지언정 불행은 없고
고통으로 인한 원망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와 함께 사는 사람은 그로 인해 고통도 받고 불행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와 똑같은 경지에 올라 있으면 고통을 겪어도 불행해하지 않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고통 때문에 불행해할 것이고 그가 무척 원망스러울 것입니다.
오늘 토빗의 아내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그래서 토빗을 원망하며 선행의 대가가 뭔지 따집니다.
“당신의 그 자선들로 얻은 게 뭐죠? 당신의 그 선행들로 얻은 게 뭐죠?
그것으로 당신이 무엇을 얻었는지 다들 알고 있어요.”
토빗의 아내는 토빗의 경지에 아직 오르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선행에 대가가 있어야 한다고 아직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그녀는 대가가 있어야 선행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과 선행의 대가가 고통일지라도
불행하지 않고 오히려 행복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대가라면 대가이고 상급이라면 상급입니다.
어떤 고통에도 행복이 요지부동인 행복,
선행에 악이 뒤따라도 행복이 요지부동인 행복,
사랑에 어떤 고통이 뒤따라도 사랑 충만으로 행복이 요지부동인 행복,
이것이 참사랑으로 선행하는 이에게 주어지는 대가임을 묵상하는 오늘 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