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토빗은 평생 진리와 선행의 길을 걸었다.”
구약성서 중에 토빗기는 드물게 선행의 모범으로 토빗을 제시하는데
참 아름답기는 하지만 토빗과 같은 삶을 살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됩니다.
여러분은 토빗과 같은 삶을 살고 싶습니까?
그것도 평생 이런 삶을 살고 싶습니까?
저의 경우 한때 이런 삶을 살았던 적이 있고
또 살고 싶기도 하지만 살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선행을 한다는 것은 분명 아름답고 행복한 것입니다.
악행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과 비교하면 분명합니다.
악행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란
그 안에 악만 가득 차 있기에 그런 것이 아닙니까?
그에 비해 선행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선과 사랑으로 충만하기에 그런 것이니 분명 행복하지요.
그렇습니다
선행은 상대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행복한 사람만이 할 수 있고 자기 행복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선행을 했을 때
아니, 선행을 하려는 마음만 먹어도 사랑이 내 안에 스며들고
행복감이 내 안에서 꽃처럼 피어나는 경험을 한 사람만이 또 하고 또 하는 거지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저는 선행의 중매를 많이 하는 편이고,
어제도 그런 중매를 했지요.
한국에 유학을 온 친구들이 영어도 배우고 싶어 하는데
마침 영어를 잘하는 친구가 있어서 이들을 엮어 줬지요.
그런데 이런 중매쟁이 짓을 하고 가면서 생각해보니
제가 영어를 잘하는 친구에게 선행을 밀어붙인 것이 아닌가?
한두 번은 큰 무리가 없지만, 매주 봉사는 무리가 안 될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 중매가 그 친구를 매주 행복하게 할까, 매주 부담이 될까 걱정된 것이지요.
실제로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여기 밥상의 자원봉사자들을 보면
처음부터 지금까지 꾸준한 분이 많지 않고 그래서 꾸준한 분들을 보면
정말 고맙고 정말 대단해 보이지만 그러기가 정말 쉽지 않은 것이지요.
오늘 토빗은 자기 생일잔치에 가난한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주님께서 선행을 하되 되갚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하라 하신 바로 그대로지요.
저 같으면 제 생일잔치에 제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을 초대해
저의 생일잔치가 유쾌한 자리가 되기를 바랄 것이고,
가난한 사람들은 그런 자리를 망치는 불청객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과거 그런 경험이 있지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식사하는데 곤궁한 분들이 껌을 가지고 와
사달라고 하면 순간 즐거웠던 분위기가 잠시 싸해지는 경험 말입니다.
그러니 토빗은 자기 생일잔치마저 즐거움이 아니라 사랑을 선택한 것이고,
즐거움의 행복이 아니라 희생의 행복이요 사랑의 행복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런데 토빗은 희생의 행복을 넘어 위험한 행복도 선택합니다.
살해당한 동족의 시신을 수습해 장사지내주는 선행을 한 것이고,
그로 인해 자기 재산이 몰수되고 쫓기게 되는 선행을 한 것입니다.
자신이 위태로워지지만
자기의 행복이 위태로워지는 것은 아니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 하느님의 사랑이 없을 때 행복이 위태로워지는 것이지
자기 밖의 상황이 위태로울 때 행복이 위태로워지는 것이 아니라고 믿는 겁니다.
이런 강한 믿음, 확신이 있었기에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평생 선행을 멈추지 않고,
그 선행이 자신에게서 그치지 않고 아들에게까지 이어지는데,
그 아름다운 얘기를 우리는 이번 주 계속 따라가며 마음에 새기도록 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