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전에 말씀드린 바 있어 제가 어떻게 강론을 준비하는지 여러분도 아실 겁니다.
새벽 강론을 올린 다음 바로 다음 날 독서와 복음을 읽고
하루 내내 독서와 복음을 가지고 묵상하고 다음 날 새벽 강론을 완성한다는 것을.
그래서 어제도 오늘 독서와 복음을 읽고 주제를 자유로 잡았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출근하는데 어제 안 보이던 나무의 새순들이 보였고,
순간 ‘나무는 자유롭고 꽃은 자유로운가?’하는 묵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즉시 나무와 꽃은 자유롭지 않고 자유가 없다는 묵상이 되었습니다.
사람은 나오고 싶을 때 나오고 싫으면 나오지 않을 수 있지만,
나무는 자기가 내고 싶을 때 새순을 낼 수 없고,
꽃은 자기가 피고 싶을 때 필 수 없으며,
사람이 머리를 물들이듯 꽃이 다른 색 꽃을 피울 수 없잖아요?
정해진 때에 피고,
정해진 모습을 핍니다.
그대로 피지 않으면 그것이 자유라고 하지 않고 돌연변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샛노란 개나리와 수선화꽃이.
야리야리 연보라 진달래꽃이.
귀부인 목련꽃은 어떻습니까?
그런데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습니까?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아름다운 머리를 괴상하게 물들이기도 하지만
비구니의 머리처럼 파르라니 삭발할 수도 있지요.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옷으로 숨기려 했지만
요한처럼 광야에서 낙타 털옷을 입을 수도 있고,
회개하는 사람들처럼 회색 옷을 입을 수도 있지요.
꽃은 자연의 이치에 순종하여 아름답지만
사람은 죄지을 자유로 사랑하니 아름답습니다.
진리에 순종하는 것도 아름답지만
자유로 사랑하는 것도 아름답다는 말이고,
자유로 진리에 순종하고 자유로 사랑까지
할 수 있는 인간이기에 더 아름답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란 진리 안에서 자유롭고
사랑 안에서 더 자유로울 수 있는 존재입니다.
오늘 다니엘서의 세 청년이 바로 그런 존재들입니다.
뜨거운 불가마도 그들을 가두거나 억누를 수 없었고,
불가마 안에서 주님과 자유로이 거닐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신 주님 안에 머물면
우리는 진리 안에서 자유롭고
사랑으로 더 자유로운 우리임을 묵상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