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복음에서 “너희 가운데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고
말한 세례자 요한이 오늘은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고 말하는데
이는 이제는 누구신지 알게 되었지만, 전에는 알지 못하였다는 말이고,
모르다가 알게 되기까지 사이에 성령의 작용이 있다고 얘기합니다.
“나는 성령께서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그러니까 하느님도 그렇고,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도 그렇고,
사람들이나 세례자 요한이나 모르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인간으로서는 알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고,
성령으로서만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A.I(인공 지능)는 하느님을 얼마나 알고 있고, 어떻게 알고 있을까?
우리 인간보다 더 많이 알고 있고, 더 잘 알고 있을까?
몇 년 전 인간의 지능과 인공 지능 간의 대결이 바둑을 통해 이뤄졌고,
인간이 인공 지능에게 진 것이 크나큰 충격을 준 적이 있었으며
그때부터 바둑 해설을 할 때 인공 지능의 해설을 꼭 곁들이지요.
같은 맥락에서 인공 지능이 우리보다 하느님을 더 잘 그리고 많이 알까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인공 지능이 더 잘 알고 증명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세례자 요한의 증언이 아니라
인공 지능의 증언에 의지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만일 그런 것이고 그럴 수 있다면 우리의 신앙, 믿음도
성령이 아니라 인공 지능에게 신세를 져야 할 것입니다.
지금 신학자들 안에서 인공 지능 시대의 신앙에 대한 토론이 활발하고,
그래서 과학과 신학의 활발한 교류가 이뤄져야 하겠지만
현재의 저의 생각으로는 인공 지능이 신앙의 부분에 답할 수 없고,
하느님에 대해서도 그리고 ‘예수가 그리스도인가?’와 같은
신앙의 문제에 대해서도 인공 지능이 답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믿음이란 지적인 앎이나 과학적 지식을 넘어서는 영역이기 때문이고,
조금 아는 것을 가지고 모르는 다른 부분을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에 있어서 모르는 것은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릅니다.
안다고 까불다가 믿지 못하고,
아는 것이 전부라고 믿다가
정작 하느님을 믿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기가 조금 아는 것을 믿으면 난리 납니다.
제대로 된 사람이나 자기 꼬라지를 아는 사람,
아니, 인간의 꼬라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자기가 알고,
인간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알아야 하지만
우리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하느님임을 알아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은 우리가 아니고 하느님임도 알아야 합니다.
영적인 세계와 영적인 존재는 이 세상 너머의 것이니
성령을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아니, 성령을 통해서만 볼 수 있고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세례자 요한처럼
모르는 것을 아는,
모르지만 믿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