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오늘 한국 순교 성인들의 축일에 의인의 영혼은 하느님 손안에 있기에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을 우리가 들었는데 이 말씀은
이해하기 쉽지 않고 그래서 설명이 필요할 것입니다.
왜냐면 여기서 고통이 없다고 말한 것은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그것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하느님 안에 있고 하느님과 함께 있어도 고통이 있고,
오히려 더 많은 고통과 더 큰 고통을 겪고 있음을 우리는 압니다.
모든 성인이 그랬고, 오늘 축일을 지내는 우리 성인들도 그랬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고통은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그것과 다릅니다.
고통을 주지 않고 받지 않아서 고통을 겪지 않은 것이 아니라
고통을 줘도 받지 않거나 받아도 겪지 않는 그런 고통을 말함일 겁니다.
우선 박해를 받으면 온갖 고문이 있고,
그래서 육신의 고통을 피할 수 없지요.
사실 이 고통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저뿐 아니라 많은 분이 안락사 방식으로 순교시킨다면 배교하지 않을 겁니다.
실제로 박해 시대 때 많은 분이 고문의 고통으로 어쩔 수 없이 배교하였고
독재시절에는 다른 민주화 운동 동지의 이름을 대는 배신을 했다고 하지요.
그런데 박해 시절 고문을 받을 때 육체만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근심, 걱정, 불안, 두려움 같은 심리적 정신적 고통이 없었겠습니까?
이로 인해 온갖 고뇌와 번민이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마침내는 주님 안에서 고통을 겪지 않게 된 것이고,
이런 것들을 다 통과한 다음에 갖게 된 평화로운 고통을 말함일 것입니다.
오늘 독서도 시험과 단련을 얘기하고 불사의 희망을 얘기하고 평화를 얘기합니다.
순교자들은 박해자들의 박해를 하느님의 시험으로 받아들이고
그래서 시련을 통해서 하느님의 자녀로 단련을 받은 분들이며
끝까지 불사의 희망을 놓치지 않은 분들이고 마침내 평화롭게 된 분들입니다.
그러니까 순교자들은 고통을 겪지 않은 분들이 아니라
평화로운 고통을 겪은 분들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의 평화는 고뇌와 번민의 과정을 거쳐서
마침내 근심, 걱정, 불안, 두려움 같은 것들이 사라진 마음의 평화이고
무엇보다도 하느님 품 안에서의 인격적인 평화이고 사랑의 평화입니다.
오늘 두 번째 독서는 그래서 그리스도와 우리의 사랑의 관계를 얘기합니다.
독서는 우리를 그리스도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도 있는 것들을 다 열거하며
이 가운데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는지”
물은 다음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라고 아주 확신에 차서 얘기합니다.
그러니 박해자들의 평화는 사랑이 이 모든 것을 이겨낸 승리의 평화이고,
하느님 안에서 이 모든 것이 온순해진 평화입니다.
오늘 복음의 주님은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마지막 순교가 아니라 일상의 순교를 말씀하고 계시는 것인데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순교는 우리의 성인들처럼 마지막의 영웅적인 순교가 아니라
매일 자신을 버리고, 매일 우리의 십자가를 평화롭게 지는 거라는 말씀이겠습니다.
매일 평화로이 십자가를 진다!
이것이 묵직하게 마음에 남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