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호숫가로 물러가셨다.
그러자 갈릴래아에서 큰 무리가 따라왔다.”
피정을 영어로는 "Retreat"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군대가 전선에서 철수하듯 물러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피정에는 어디서 떠나는 것, 물러나는 것의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주님께서 호숫가로 물러가십니다.
그러니까 오늘 복음의 주님도 일종의 피정을 하시는 셈인데,
오늘 우리는 주님의 피정에 비추어 우리의 피정이 어떠해야 하는지,
우리의 삶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성찰할 수 있겠습니다.
일반사전은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성당이나 수도원 같은 곳에 가서
장시간 조용히 자신을 살피며 기도하는 일>이라고 피정을 정의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수도원에서 일생 사는 수도자들이
피정을 제일 자주 그리고 많이 합니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시끄런 세상을 피하여 수도원에 들어간 사람들이
그것으로도 모자라 또 어디로 피해 가는가 의아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볼 때 피정이란
성당, 수도원과 같이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피정은 자기의 일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상을 떠남이 염세적인 도피가 아니라
세상과 사람들을 더욱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일상에서 물러남은 일상으로부터의 도피와 다릅니다.
물러남은 일시적이지만 도피는 영원히 떠나는 것입니다.
잠시 일상에서 떠났다가 다시 돌아가면 물러남이고
다시 돌아올 생각 없이 완전히 떠나면 도피입니다.
그러니까 도피는 근본적으로 세상을 싫어하는 것인데 비해
물러남은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고,
더 사랑하기 위해서 잠시 떠나는 것이며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피정을 해야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돌아갈 수 있을까요?
피정이란 피세정념避世靜念의 준말이라는 설도 있는데,
번잡한 세상사를 피하여 고요함 가운데 생각에 깊이 잠기면 되겠습니까?
이것만으로도 훌륭한 피정이라고 할 수 있지만
사랑을 배가하는 진정한 피정은 그저 일상을 떠나고
그저 고요 가운데 머무는 것 이상이어야 합니다.
하느님 사랑에 머무는 피정이어야 합니다.
번잡한 세상을 떠남이 피정의 시작이고
고요함 가운데 침잠하는 것이 피정의 심화라면
사랑에 머무는 것은 피정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레박이 우물에 잠기면 두레박에 이 가득 차듯
하느님 사랑에 푹 잠겨 사랑으로 가득 차는 피정을 우리도 한 번 해봅시다.
집에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