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좋아하는 우리 단가 중의 하나가 사철가입니다.
이 단가의 첫 대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산 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어 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허드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늘 백발 한심허구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왔다 갈줄 아는 봄을 반겨 헌들 쓸데있나
봄아 왔다가 가려거든 가거라.“
이 가사는 사철을 노래하는 것중에 봄 대목이지만,
젊은이가 부르는 봄 노래가 아니라
황혼에 있는 사람의 봄 노래이기에 봄 대목인데도 쓸쓸합니다.
제가 이 노래를 좋아하기 시작한 것은 나이 먹어서가 아니라
이 노래를 처음 들은 30대 때부터이고, 이 노래를 젊었을 때부터
좋아한 이유는 흥타령이나 '허무로다. 허무로다.'를 얘기하는
코헬렛을 젊을 때부터 좋아했던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곧, 인생을 거시적으로 보게 하기에 좋아하고,
젊다고 또는 힘이 있다고 날뛰지 않게 하기에 좋아하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왜 이런 얘기를 길게 할까요?
그것은 오늘 사도행전의 가물리엘의 말 때문입니다.
"저들의 그 계획이나 활동이 사람에게서 나왔으면 없어질 것입니다."
가말리엘은 당대의 바리사이나 권력자들과 비교할 때 영적으로 참 지혜롭습니다.
어떤 면에서 그렀냐 하면 힘이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계획이나 결정이나 실행을
하느님 뜻대로 하기보다 자기 생각대로 하려는 경향이 큰 데 비해
가말리엘은 그렇지 않다는 면에서 그럽습니다.
그렇습니다.
힘이 있는 사람은 자기 뜻대로 일을 시작하고 자기 힘으로 일을 마치려고 하지
결코 하느님 뜻대로 일을 시작하고 하느님의 힘으로 일을 마치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절대권력을 얘기할 때 무소불위의 권력이라고 흔히 얘기합니다.
무소불위無所不爲란 그대로 직역하면 못할 것이 어디에도 없다는 뜻인데
사마천이 사기에서 여불위의 절대권력을 일컬어 쓰기 시작한 말이라고 하지요.
원래 장사꾼이었던 여불위는 돈의 힘으로 무엇이든 하는 사람이었는데
자기의 애첩을 왕에게 바치고 그 애첩에게서 난 아들이 진시황이 되게 하고는
절대권력까지 소유함으로써 못할 일이 하나도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만일 힘 있는 사람 중에 하느님 뜻대로 일을 시작하고
하느님의 힘으로 일을 마치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가말리엘처럼 하느님 아래 자기 힘을 두는 영적으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다음의 성무일도 마침 기도를
자주 우리의 <일 기도> 또는 <실행 기도>로 바치며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끝마친다면 좋을 것입니다.
"주여, 간구하오니, 우리가 할 일을 알려 주시고 그 일을 행할 힘을 주시어,
우리 모든 일을 당신으로 말미암아 시작하고
시작한 것을 당신으로 말미암아 끝마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