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모두를 구원하시만, 모두를 치유해주시지는 않습니다.
더 정확이 말하면 하느님은 모두를 구원하실 생각이시지만
모두를 치유해주실 생각은 없으십니다.
그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실제로 복음의 주님께서도 수많은 사람의 병을 치유해주셨지만
모든 사람의 병을 치유해주신 것은 아니었지요
이것을 보고 우리는 공평하지 않으시다고 할 수 있지만
주님의 공평은 구원의 공평이지 치유의 공평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오늘 독서와 복음의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선인에게나 악인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시고
하느님의 사랑은 이스라엘 사람에게나 이방인에게나 똑같아서
모두를 구원하시고자 하시지만, 치유만은 모두에게 똑같지 않으십니다.
그러면 누구는 치유해주시고, 누구는 치유해주시지 않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알 수 없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이며
우리의 공로나 정성에 따라서가 아니라 순전히 은총입니다.
구약의 나아만이 치유된 것은 나아만이 선한 사람이어서가 아니고,
나아만이 공로를 많이 세워서도 아닙니다.
실제로 나아만 치유받으러 엘리사에게 가면서
많은 예물을 뇌물처럼 가지고 갔지만 엘리사는 그것을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나아만은 더 좋은 강물에서 더 정성껏 치성을 드려야만 치유될 거라 생각했지만
엘리사는 쫄쫄 흐르는 그 작은 요르단강물에 일곱 번 몸을 담그라고만 하였지요.
엘리사는 심지어 나아만 앞에 나와보지도 않고
심부름꾼을 시켜 말만 전하게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치유는 하느님 뜻에 맡기고 그저 구원만 바라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