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한 내용의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와 엘리사벳은 왜 만났습니까?
친척이기에 만났습니까?
아닙니다.
임신한 여자끼리 태교하는 방법을 나누기 위해 만났습니까?
아닙니다.
두 분은 이런 인간적인 동기와 이유에서 만난 것이 아니고
상대 안에서 이루신 하느님의 놀라운 일들을 보고,
또 그것을 보고 같이 기뻐하기 위해서입니다.
두 분은 진정 하느님을 보고 하느님께서 하신 일을 봅니다.
그래서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이렇게 칭송합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이런 칭송을 들은 마리아가 이제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칭송을 받은 마리아가 이제 하느님께 칭송을 돌리는 것이고
상대 안에서 이루신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칭송하는 것에서
자신 안에서 이루신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칭송하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노래합니다.
엘리사벳 당신 뿐 아니라 만세가 나를 칭송하는 이유는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라고.
성숙한 인간,
무엇보다도 신앙적으로 성숙한 인간은
이웃의 선을 보고 질투하거나 열등감을 느끼기보다
그 안에서 이루신 하느님의 선을 보고 같이 기뻐할 뿐 아니라
자기 안에서 이루어진 선에 대해서도 볼 줄 압니다.
그러나 그 선에 대해서 자기를 자랑하기보다
그 선을 이루신 하느님을 보고 칭송합니다.
이웃과 자신 안에서 악을 더 많이 발견하지 않고
선을 더 많이 발견하는 사람은 성숙하고 행복한 사람입니다.
저는 일본을 방문하고 어제 밤 돌아왔습니다.
이번 일본 방문을 하면서 제가 저 자신에게 느낀 것은
일본에 대한 저의 시선이 많이 따듯해졌다는 것입니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지금까지 여러 차례 일본을 방문하였지만
늘 일본이 우리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무엇이 우리보다 낫고 우리보다 못한지,
경쟁적인 시각으로 보고 날 선 면도날처럼 비판을 하였었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비해서도 훨씬 더 제가 일본에 대해 부드러워졌고
지내는 5일 내내 그리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일본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진정으로 이해하고 긍정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인간적인 따듯한 이해와 긍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신앙 안에서 이해와 긍정을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이웃과 내 안에서 이루신 선을 볼 줄 아는 것,
그래서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릴 줄 알게 되는 것,
이것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인간 세계 안에 갇혀
지지고 볶고 하던 것을 넘어 하느님 세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너와 내 안에 깊이 들어와 있는 하느님의 선을 그윽하게 들여다보고
하느님의 그 크고 따듯한 세계에 나도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리아와 엘리사벳은 왜 만났습니까?
친척이기에 만났습니까?
아닙니다.
임신한 여자끼리 태교하는 방법을 나누기 위해 만났습니까?
아닙니다.
두 분은 이런 인간적인 동기와 이유에서 만난 것이 아니고
상대 안에서 이루신 하느님의 놀라운 일들을 보고,
또 그것을 보고 같이 기뻐하기 위해서입니다.
두 분은 진정 하느님을 보고 하느님께서 하신 일을 봅니다.
그래서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이렇게 칭송합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이런 칭송을 들은 마리아가 이제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칭송을 받은 마리아가 이제 하느님께 칭송을 돌리는 것이고
상대 안에서 이루신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칭송하는 것에서
자신 안에서 이루신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칭송하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노래합니다.
엘리사벳 당신 뿐 아니라 만세가 나를 칭송하는 이유는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라고.
성숙한 인간,
무엇보다도 신앙적으로 성숙한 인간은
이웃의 선을 보고 질투하거나 열등감을 느끼기보다
그 안에서 이루신 하느님의 선을 보고 같이 기뻐할 뿐 아니라
자기 안에서 이루어진 선에 대해서도 볼 줄 압니다.
그러나 그 선에 대해서 자기를 자랑하기보다
그 선을 이루신 하느님을 보고 칭송합니다.
이웃과 자신 안에서 악을 더 많이 발견하지 않고
선을 더 많이 발견하는 사람은 성숙하고 행복한 사람입니다.
저는 일본을 방문하고 어제 밤 돌아왔습니다.
이번 일본 방문을 하면서 제가 저 자신에게 느낀 것은
일본에 대한 저의 시선이 많이 따듯해졌다는 것입니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지금까지 여러 차례 일본을 방문하였지만
늘 일본이 우리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무엇이 우리보다 낫고 우리보다 못한지,
경쟁적인 시각으로 보고 날 선 면도날처럼 비판을 하였었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비해서도 훨씬 더 제가 일본에 대해 부드러워졌고
지내는 5일 내내 그리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일본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진정으로 이해하고 긍정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인간적인 따듯한 이해와 긍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신앙 안에서 이해와 긍정을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이웃과 내 안에서 이루신 선을 볼 줄 아는 것,
그래서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릴 줄 알게 되는 것,
이것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인간 세계 안에 갇혀
지지고 볶고 하던 것을 넘어 하느님 세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너와 내 안에 깊이 들어와 있는 하느님의 선을 그윽하게 들여다보고
하느님의 그 크고 따듯한 세계에 나도 참여하는 것입니다.
요즘 말씀 나누기를 접하며, 느끼고, 배우는, 그리고 삶 안에서 기억하게 하는 공통된 단어였다 생각이 듭니다.
그 순간 하느님을 만나게됩니다
善 물줄기는 나를 변화시키고
변화안에서 하느님 세계를 보게됩니다
하느님께 영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