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오늘 독서는 창세기 2장의 천지 창조 얘기인데
그 창조 얘기가 1장의 것과 사뭇 다릅니다.
그런데 왜 다릅니까?
어떤 것이 진짜 천지 창조 얘기입니까?
성경을 글자그대로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혼란일 텐데
구약은 왜 두 가지 다른 창조 얘기를 그대로 전해주고 있는 겁니까?
이에 대해 성서학자들은 엘로이스트와 야휘이스트가 각기
자기들의 전통에 따라 기술한 거라고 설명을 하고 있고 그것에 타당성이
있겠지만 저는 오늘 프란치스코의 글에 기초하여 이 점을 보고자 합니다.
프란치스코는 권고 5번에서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오, 사람이여, 주 하느님께서 육신으로는 사랑하시는 당신 아들의 모습대로,
그리고 영(靈)으로는 당신과 “비슷하게” 그대를 창조하시고 지어내셨으니,
주 하느님께서 그대를 얼마나 높이셨는지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 하늘 아래에 있는 모든 피조물은 나름대로
자신의 창조주를 그대보다 더 잘 섬기고 인식하고 순종합니다."
저는 프란치스코의 이 글에 근거하여 창세기 1장은 말씀 곧 성자의 창조,
2장은 숨 곧 성령의 창조를 얘기하는 거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1장의 말씀의 창조는 초월적 하느님의 창조요,
2장 숨의 창조는 내재적이고 육화적인 하느님의 창조라고,
그리고 1장의 창조는 하느님의 전능을 더 드러내고
2장의 창조는 하느님의 사랑을 더 드러낸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1장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거리, 천지 차이를 드러내고,
2장은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일치를 드러낸다고 또한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창세기 2장을 묵상하면서 땅에까지 내려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실 뿐 아니라 우리 코에 숨을 불어 넣어주시는 하느님을
사랑으로 만나는 우리가 되고 그분의 숨을 쉬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어차피 숨을 쉽니다.
그리고 숨을 쉬면 목숨이 붙어 있고
숨을 쉬지 않으면 몇 분도 못 가서 목숨이 끊어집니다.
우리는 물리적으로는 이렇게 목숨을 유지하는데 영적으로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어차피 숨을 쉬는데 숨을 쉬면서 그저 공기를 들이킵니까?
아니면, 하느님의 숨을 들이킵니까?
우리는 어차피 숨을 쉬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들이키는 기도를 합니까?
아니면, 호흡법에 따라 명상과 좌선을 하는 것에 머뭅니까?
우리는 나쁜 공기를 마시지 않기 위해 공기 청정기를 설치하고,
좋은 공기를 마시러 숲으로 가는데 영적으로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미움과 분노와 욕망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마시기 위해서는 무엇을 하고 어떤 노력을 합니까?
미움과 분노와 욕망은 날숨으로 내보내고
하느님 사랑은 들숨으로 들이키는 기도를 잘하고 있습니까?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내 마음보 안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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