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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베드로 2009.02.08 15:52

연중 제5주일

조회 수 1102 추천 수 0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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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5주일 (나해), 마르 1,29-39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손을 잡아 일으키는 것”은 부활과 연관이 있다. 단순히 고통을 제거하는 것만이 아니라 고통을 넘어선 부활을 말한다. 열병을 알고 있는 사람은 누워있기도 힘든데 그런 사람을 잡아 일으킨다는 것은 그 사람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직접 건드리는 것으로 굉장한 고통이다. 그러나 자신의 손을 맡김으로써 그것이 오히려 완전한 해방을 가지고 온다. 즉 열이 가시고 더불어 시중을 들기 시작한 것이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본다면 단순히 ‘아버지 하느님 살려주세요. 이 십자가의 고통에서 벗어나 살게 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만약 그랬다면 엄청난 고통에서 해방은 되었겠지만 그것은 부활이 아니다.

‘손을 잡다’라는 말도 두 가지 상반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연민, 호의, 애끓음, 동정과 같은 마음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 부인의 입장에서는 내어 던짐, 맡김, 고통의 심연과 같다.

오늘 제1독서에서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호소하는 욥이 단순히 현재의 고통만 해결되었다면, 그래서 자신의 병을 고치고 잃었던 자식과 재산을 다시 그대로 찾았다면, 그는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욥은 지금까지 몰랐던 새로운 차원이 있음을 깨닫는다. 그것은 우주의 신비를 다 헤아리지 못하는 것처럼 인간의 삶도 모두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느님께서는 이런 시련 중에서 아주 떠나신 것이 아닐까!’라는 하느님의 부재를 체험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모든 것을 주재하고 계셨음을 깨닫는다.

이제 욥은 이해할 수 없었던 고통 속에서 오히려 ‘하느님께 대한 갈망’을 자신의 존재의 밑바닥에서부터 끌어 올려 자라게 했고, 이는 결국 ‘하느님과의 만남’, 곧 부활을 예고한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 계심을. 그분께서는 마침내 먼지 위에서 일어서시리라. 내 살갗이 이토록 벗겨진 뒤에라도 이내 몸으로 나는 하느님을 보리라. 내가 기어이 뵙고자 하는 분, 내 눈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그분을 보리라. 속에서 내 간장이 녹아 내리는구나!(욥 19,25-27).

결국 그는 그 고통 속에서 하느님을 만난다. 그리고 자신의 입을 함부로 놀리며 하느님을 원망하고 좌절했던 과거를 뉘우친다.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당신에 대하여 귀로만 들어 왔던 이 몸, 이제는 제 눈이 당신을 뵈었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며 먼지와 잿더미에 앉아 참회합니다”(욥 42,5-6).

그럼으로써 그전에 소유했던 것보다 모든 면에서 갑절로 축복을 받는다. 그러나 이제 욥에게 이 2배, 아니 5배의 재물이 늘었다 해도 그에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는 이미 다른 차원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통이 계속 남아 있었다고 해도 이제 그것이 그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는 관상생활로 넘어갔다.

영적 여정도 마찬가지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감옥에 갇히는 억울한 일을 당하지만 거기서 자신의 노력으로 벗어날 수 없었던 새로운 세계로 건너가는 체험을 한다. 기도의 메마름, 맛 끊김, 한계 체험 등, 이 모든 것이 우리를 다른 차원으로 이끌어 준다. 그는 노래한다. “저 밤이 날 인도했다네. 한낮의 빛보다 더 확실하게, 날 기다리는 분이 있는 곳으로. 내가 잘 알고 있던 분께로, 아무도 보는 이 없는 곳으로. 오! 이끌어준 밤이여! 새벽보다 더 다정한 밤이여!”

오늘 날에도 욥의 탄식과 같은 탄식을 하는 사람들에게 일으켜주어야 하는 것은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남도 맞겠지만 먼저 그분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여전히 버리지 않고 사랑하고 계시다는 그분께 대한 신뢰이다. 저주라고 생각했던 것이 오히려 더 큰 축복을 불러 오는 하느님 사랑의 섭리로써 말이다. 그리고 이 섭리는 그분을 만나게 한다. 다음은 욥과 같이 그분을 만나겠다는 끊임없는 갈망의 끈을 놓지 않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서 부정하고 분노하며 포기하거나 자책하며 포기하기 때문이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예수님의 기도는 우리를 위하여 크나큰 힘을 지닌다. 그것은 그분이 “우리의 병고를 떠맡으시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지셨기”(복음환호송) 때문이고 “고통을 체험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박영식 신부는 이렿게 말한다. “영적 여정을 거친 사람은 지고의 체험을 통해 하느님에 대해 새롭게 말하게 되고 그의 기도는 다른 이들을 위한 중재의 효력을 지닌다. 그의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변화되어 더 이상 자신의 고통에만 갇히거나 ‘내가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라고 불평하지 않는다. 그는 영적인 기쁨을 누리며 공동체 전체를 위해 기도한다. 이 긴 여정을 통해 욥은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드릴 수 있게 되었다(욥 42,10 참조).”(『고통은 왜』, 박요한 영식)

성 바오로 사도도 이런 것을 체험한 사람이다. 그가 오늘 제2독서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분은 자신의 삶으로 기도하고 있다. 우리 또한 고통을 넘어 ‘하느님과의 만남’이라는 진정한 축복을 얻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기도할 수 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신 바오로 성인께서 “나도 복음에 동참하려는 것입니다.”라고 하는 것은 여전히 자신도 고통 속에 있고 또 고통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지만 이제 그분은 고통을 넘어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합니다.”라고 말씀하시며 우리도 복음의 길로 초대하는 것이다.

우리도 복음에 동참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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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 앗숨 2009.02.12 01:47:03
    그 영적인 여정 한가운데에 머물러 침묵하며 그분을 만나길 기도하고 있는....
    고통이 없어지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제기 변하길...
    감사합니다. 마니 힘을 얻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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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 돌담길 2009.02.12 01:47:03
    자비로우신 예수님,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 당신 복음을 위하여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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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 수선화 2009.02.12 01:47:03
    주님!
    저도 주님의 손을 잡고 싶습니다.
    저의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그리하여 그밤이 새벽보다 더 다정한 밤이 될 수 있도록...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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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 쥬라블 2009.02.12 01:47:03
    묵상 잘 하고 떠납니다.
    나누어 주셔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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