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오늘 복음의 비유를 읽으면서 뜯어봤다면 몇 가지 질문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주인공은 누구인가?
이 비유에서 주제는 무엇인가?
라자로가 천당 간 이유와 어떤 부자가 지옥 간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주인공에 대해 생각을 해보면 하나의 대비가 있으니
라자로와 어떤 부자가 되겠지만 둘 중에서도 어떤 부자가 더 주인공입니다.
라자로는 천당 갔다는 얘기만 있고 가고 난 뒤의 라자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이 없습니다.
이에 비해 부자는 지옥에 가서 겪는 고통을 서술하고,
고통에서 꺼내달라는 얘기나 자기 형제들은 자기처럼
지옥에 오지 않게 해달라고 간청을 하는 얘기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이 비유의 주인공은 부자인 것이 틀림없는데 이상한 것이
주인공이라면 이름이 있어야 하는데 이름이 없고 ‘어떤 부자’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주인공이 이름이 있고 조연도 이름이 있지만
엑스트라는 이름이 없고 엑스트라 1 또는 엑스트라 2, 이런 식인데...
그러므로 이 비유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는 부자가 유명한 사람,
곧 이름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천국에서는 이름이 없는 사람이라는 거지요.
그런데 지옥에 가있고 천국에 없으니 천국에서 이름 없는 것은 당연하지요.
두 번째로 봐야 할 것은 이 비유의 주제인데
얼핏 보면 누가 천당 가고, 누가 지옥 가느냐의 얘기 같지만
그런 것이 주 주제가 아니라 부 주제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면 비유의 맨 마지막에 회개에 대해서 부자가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고,
그러므로 이 부자가 천국에 가지 못한 이유도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이 부자가 회개했어야 할 것이 그렇다면 무엇이었을까요?
비유에서 “너는 살아있는 동안 좋은 것들을 받았다.”고, 곧
부자였다고 하는데 부자인 것이 죄이고 가난해졌어야 했던 건가요?
오늘 독서와 연결시켜 보면 그것이 죄가 아니고 회개할 것도 아닙니다.
돈이 많은 것이 아니라 돈에 의지하여 하느님께 의지하지 않은 겁니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의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나 있다.”
부자는 돈에 의지하고 돈이 주는 안락함에 안주하여
하느님도 필요 없다고 하고 라자로를 비롯하여 이웃과 단절된 삶을 삽니다.
돈의 천국에서 자기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었기에
다른 천국이 필요 없었고, 나의 천국을 누가 침범하여 훔쳐 갈까봐
문단속을 철저히 하고 이웃과도 하느님과도 완전히 단절된 삶을 삽니다.
이 닫히고 단절된 세계와 관계가 죄이고
그러므로 우리도 회개해야 한다면 이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이것을 사순절의 자선과 연결시킨다면 돈은 많은데
줄 마음이 없는 것이 죄이고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며칠 전에 들은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드리며 마치겠습니다.
어떤 이가 돈이 많은데 살아있는 동안 한 자선은 파 한 뿌리 준 것뿐입니다.
그래서 그 파 한 뿌리에 매달려 천국으로 올라가는데 그만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발에 매달려 그 파 한 뿌리가 끊어질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자가 꾀를 내어 “대한민국”하고 외치니 매달렸던 사람들이
“짜자-자 짝짝”하고 박수를 치느라 다 떨어져나갔습니다.
부자는 이제 됐다하고 천국까지 올라 가 의기양양 들어가려는데
천국 문에 “단체 입장”이라고 써있더랍니다. 재미있었나요?
오늘 모임에 가서 다른 이들에게도 웃음 전해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