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한 7-8년 전에도 그러더니 요즘 들어 제 입에서 가끔 욕이 나옵니다.
물론 공적인 자리가 아니고 대놓고 하는 욕이 아니기에
그러다 깜짝 놀라 얼른 입을 닫기는 하지만 생각게 됩니다.
말끝마다 쌍소리를 하는 군대에서도 저는 욕을 한 번도 하지 않고
그동안 입술은 물론 마음에도 욕이 맴도는 것을 허용치 않았었는데
왜 나이 먹어 욕이 튀어나오는 것일까?
정말 마음에서 튀어나오는 진짜 욕인가?
잘 성찰해보니 마음에서 튀어나오는 것은 맞습니다.
안에 불만이 있으니 불만이 욕으로 튀어나오는 겁니다.
단지 전과 비교하면 요즘은 억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지금은 억압을 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불만이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불만이 컸고 그래서 누르지 않으면 크게 터지고 큰 문제가 되기에
초등단계에서부터 그 불만을 강하게 눌렀고 또 누를 힘이 있었습니다.
허나 지금은 악의가 없는 욕쟁이 할머니의 욕과 비슷하게
불만이 크지 않기에 누르지 않고 허용하는 것이고
누르는 힘도 약해졌기에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어쨌거나 안에 있는 것이 말로 나오는 것이고,
어떤 존재냐에 따라 그의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을 잘 담고 있는 말이 불가애서 내려오는 다음 말입니다.
사음수성독蛇飮水成毒, 우음수성유牛飮水成乳.
뱀은 물을 먹어 독을 만들고, 소는 물을 먹어 젖을 만든다는 말인데
같은 물을 먹어도 뱀은 남을 해치는 독을 만들고
소는 남을 살리는 젖을 만든다는 뜻이지요.
이렇게 어떤 존재냐에 따라 나오는 것이 다르니 아무리 좋은 것을 먹어도
존재가 뱀과 같은 존재에서 소와 같은 존재로 바뀌지 않으면
좋은 말, 남을 살리는 말이 나올 수 없다는 말이 되기도 하지요.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하면 이런 말이 되겠습니다.
주님의 영을 지니지 않고 육의 영을 지닌 육의 사람/세속적인 사람은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고 좋은 강의 많이 들어도 그에게서 나오는 말은
비 복음적이고 세속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재속 프란치스코회의 회칙이 얘기하는 회개는 아주 의미심장합니다.
“회원은 복음의 강력한 힘에 자극받은 절대적이고 완전한 내적 변화에 의해 자신
의 생각과 행동 방식을 그리스도와 일치시켜야 한다. 복음은 이것을 회개라 한다.”
그러니 회개란 겉으로 말만 근사하게 하는 것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말의 곳간인 마음이 바뀌는 것이고
비 복음적인 사람이 복음적인 사람으로 근본적이고 내적으로 바뀌는 거지요.
또 요즘 사람들에게 화가 많은데 이와 관련하여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지요.
안에 분노/화가 있는데 화를 내지 않을 수 없고,
칭찬과 감사와 축복과 같은 말이 나올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화를 참거나 누르는 걸 젊을 때는 어느 정도 할 수 있지만
나이 먹어 누를 힘이 떨어지면 화가 폭발하거나
힘이 있더라도 너무 오래 지속되면 화병이 되고 말지요.
그러니 이미 생긴 화를 억지로 누르려 해서는 안 되고
아예 생기지 않도록 안에서부터 자신을 잘 다스려야 하는데
모든 사람이 내 맘에 들고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기를 바라는 그 욕심을
근본적으로 비우는 쉽지 않은 작업을 오늘부터 하기로 다짐하는 우리입니다.
선한 곳간을 고치고 증축하여 모든 이와 더불어 넉넉해지면 좋겠습니다.♡
인간의 육체가 불투명해서 서로의 속마음을 알 수도 알릴 수도 없기에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말을 할 수 있게 하시고 말을 통해 서로의 속마음을
알아가도록 하셨다 싶습니다. 그래서 고운 말을 하는 사람은 마음이 곱고
상스러운 말을 하는 사람은 마음이 상스럽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싶습니다.
어떤 경우 상대의 말을 듣다보면 앞뒤가 안 맞는 말, 자기 말에 모순이 있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때 아~이 사람이 갖고 있는 문제의 출발이 여기에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면서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인식하지 못하는
상대가 안타깝고 그런 상대를 바라보면서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저도 이 글을 쓰면서 제 글에 모순은 없는지 또 제가 쓴 글이 오히려 저에게
화살이 되어 되돌아오지는 않을까 하는 조심스런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살다보면 마음속에 품었지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말하고 싶지 않은,
또는 말하지 못한 인간의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싶습니다.
만약 하느님마저 안계시다면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는 마음들은 어찌해야 할까...!
저는 그리 신앙이 깊지 않습니다만, 이런 까닭에 이성적으로라도 하느님은
계셔야 하고 계실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이렇게 넘 인간적이랍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들보를 깨닫지 못하느냐?”
그렇습니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 눈에서 들보를 빼내는
것은 제 마음의 어두움을 몰아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싶습니다. 무엇보다
먼저인 것은 제 마음의 어두움을 몰아내는 작업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제넘게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하는 꼴이 될 것입니다.
바른 길로 인도하는 길잡이가 되기 위해 나부터 배우고 깨닫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은 이런 제 자신을 위해 기도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