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오늘 주님께서는 세 가지를 조심하라고 하십니다.
방탕, 만취, 근심 세 가지인데 이것들이
우리의 마음을 물러지게 하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우선 조심하라는 것을 보겠습니다.
조심操心이란 말을 그대로 풀이하면 잡을 操에 마음 心이고,
마음을 잡다는 뜻이며 방심放心, 마음을 놓는 것과 반대되는 말입니다.
우리는 방심하면 큰 일 난다고 합니다.
권투를 하는데 다 이겼다고 방심을 하면 마지막 5초를 남기고
K. O 펀치를 맞고 다 이긴 경기 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늘 방심은 하지 말고 조심은 해야 하는데
조심이나 방심은 늘 안 좋은 것과 관련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좋은 일이 일어날까봐 조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주님께서 조심하라고 하신 것은 뭘 조심하라고 하신 걸까요?
길 가다가 차에 치일까 조심하고,
위험한 곳에 가 강도 만날까 조심하고,
중요한 자리에서 말실수할까 조심하고, 뭐 이런 것들입니까?
이런 것도 우리가 조심해야지만 주님께서 이런 것 조심하라하시지 않겠지요.
이런 것은 우리의 부모들이 해도 되는 것이니
주님께서 잔소리 같은 이런 조심을 시키지는 않으실 겁니다.
주님께서 조심하라하시는 것은 더 중요한 것에 대한 겁니다.
종말의 순간에 영적인 생명이 왔다갔다는 것과 관련된 것이고,
우리의 생사를 쥐고 계시는 분을 만나는 것과 관련된 겁니다.
곧 오늘 복음의 끝에 나오는 <사람의 아들>, 곧 우리의 주님이
모든 것을 흔들리는 종말의 때에 우리에게 오시는데, 그리고
우리는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고 주님 앞에 서야 하는데
그 때 주님 앞이 아닌 딴 곳에 있지 않도록 조심하고 방심치 말라는 거지요.
그러면서 우리의 조심을 방심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물러지게 하는 것들을
구체적으로 세 가지를 적시하시는데 그것이
바로 방탕, 만취, 일상의 근심입니다.
방탕放蕩이란 욕망에 이끌리는 대로 사는 것이니
방탕하게 되면 어떤 조심이나 절제도 없겠지요.
인간적이든 영적이든 잘 살아야겠다는 마음도 없고,
목적도 없이 욕망대로 곧 주색잡기에 빠져 사는 겁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방탕하게 하는 것 중에서도
만취를 따로 예를 들어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다른 방탕한 것이나 뒤에 나오는 근심보다
술을 좋아하는 저에게 제일 찔리는 것입니다.
제가 술을 좋아하지만 만취까지는 하지 않는다고
늘 합리화를 하지만 술은 늘 즐기는 것이지 조심하는 것은 아닙니다.
많이 마시는 것을 조심하기는 하지만 조심하자고 술 마시는 사람 없잖아요?
그런데 의아한 것은 일상의 근심도 우리 마음을 무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근심은 우리가 생각하기에 조심하는 것과 비슷한 것인데
근심도 우리 마음을 무르게 한다니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주님 앞에 서야 하는데 그것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근심하나요?>라고 얘기합니다.
기도는 하느님을 향하고 근심은 세상을 향하는 거지요.
주님 앞에 설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해야 하는 우리인데 그러지 못하게
우리 마음 물러지게 하는 이 세 가지를 조심키로 마음먹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