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리스도 왕 축일을 지내는 것은
예수님을 이 세상 왕으로 세우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그리스도 왕과 세상 왕은 근본적으로 다르기에
우리는 이 축일을 지내며 세상의 왕을 우리의 왕으로 섬기지 않고
그리스도 왕을 우리의 왕으로 섬기겠다고 충성맹세를 하는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신하도 없고 백성도 없는 왕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므로 그리스도 왕 축일을 우리가 지내는 것은
그리스도를 우리의 왕으로 옹립할 뿐 아니라
우리가 그분의 충실한 신하와 백성이 되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제 자신을 깊이 성찰하면 이 축일을 지내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이 겉치레요 사기가 아닌지 생각이 됩니다.
이는 마치 10대 20대 때는 누구의 영명축일을 맞이하면 어떻게 축하할까
제가 고민하고 궁리하며 어떤 때는 어설프게 어떤 때는 제법 멋지게
어쨌든 마음을 담아 축하를 하곤 했는데 그것이 언제부턴지 모르지만
마음이 시들하여 진심과 감동이 없는 축하를 하게 된 것과 같은 느낌입니다.
오늘 감사송은 그리스도 왕께서 세우시려는 나라가 “진리와 생명의 나라요,
거룩함과 은총의 나라이며,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나라”라고 하는데
나는 지금 주님과 함께 이런 나라를 세우려는 열망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는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당신이 오심과 함께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그러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시는데
저는 이 세상에서 내 왕국을 건설하려고 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제가 선교협동조합을 세우려는 계획을 다 마련해놓고
열정적으로 추진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이 과연 하느님 나라 건설인지 내 욕심의 성취인지
같이 일하자고 사람들을 모으는 것이 주님의 신하와 백성을 모으는 건지
내 사업의 동조자를 모으는 건지 불순물이 있어 명확치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물에 불순물이 있으면 뿌옇기에 잘 보이지 않는 것인데
그것, 곧 불순물이 있어 명확치 않은 것이 어제 선명히 보였습니다.
어제 이곳 강릉에 와서 강릉 지구 형제회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교육을 마치고 우리 형제 하나와 몇 분 3회원과 식사를 했는데
식사 중에 지난 10월 마지막 날 이곳에서 있었던 음악회 얘기를 했습니다.
이 음악회가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
이 음악회가 어떻게 하느님 섭리로 성사되었는지 얘기를 나눴는데
이 음악회를 주관한 저희 형제의 순수한 열정이 이것을 가능케 하였지요.
이 형제는 진정 불순물이 없기에 이렇게 열정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아침 저는 이 형제의 순수한 열정에 제 마음의 세탁을 합니다.
마음 세탁이란 저도 다시 순수한 마음으로 거짓과 욕심이 가득한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고 주님의 왕국을 건설하자고 마음을 고쳐먹는 거지요.
그리고 오늘 저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이 세상을 다스리시기 전에 제 마음을 다스려주소서.
그리고 프란치스코의 주의 기도 풀이를 오늘 다시 마음에 새겨봅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은총으로 저희 안에서 다스리시고,
당신의 나라에 저희가 이르게 하시기 위함이나이다.
그 곳에는 당신께 대한 또렷한 바라봄이 있고
당신께 대한 완전한 사랑이 있고
당신과의 복된 사귐이 있으며
당신의 영원한 누림이 있사옵니다.”
신부님의 거룩한 계획이 실현 되고
확장되어 주님이 원하시는
그리스도 왕국을 이 땅에
이룩하시리라 믿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