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마음으로 강론을 쓰면 안 되는데
강론을 쓰고 나면 이런 마음이 바뀌기를 바라며 강론을 씁니다.
남자의 계절인 가을에 가을을 타기 때문인지 또는
기력이 떨어졌기 때문인지 요즘 왠지 기운이 없고
허무감 같은 것이 얼마간 있습니다.
그래서 전에 비해 추진력이 훨씬 떨어지고
뭘 해도 영 능률이 오르지 않습니다.
선교 협동조합을 시작한다고 말은 꺼내 놓고는 자꾸만 미뤄
이제 뭔가 나타나기를 많은 사람이 기다리게 하고,
기다리다 못해 빨리 추진하라고 요구하는데도 영 머뭇거리기만 합니다.
게다가 지난 한 주간은 신문사 칼럼이니 3회 연수회 강의록이니
연 피정 강론이니 여러 가지가 몰렸는데 영 글이 나오지 않아서
참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이런 저에게 오늘 바오로 사도의 다음 말씀이 마음에 콕 박힙니다.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추진력이 떨어지고 능률도 오르지 않는 것과
뭘 해도 시들하고 허무감이 얼마간 있는 것이 다
제 안에 사랑이 없거나 비실하기에 그리 된 것 같았고
모든 게 다 소용없는 것처럼 느껴진 것 같았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예전에는 하느님 없이도 사랑이랄까 열정이랄까
뭔가가 안에서부터 솟아나고 솟구치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힘으로 창작력을 발휘하여 소설이나 곡을 쓰기도 하고,
그 힘으로 프란치스칸 이상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려고 하였으며,
그 힘으로 주어진 일들 안에서 창의력을 발휘하거나
제 스스로 일을 만들어 열정적으로 추진하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연히 안에서 솟아나고 솟구치는 힘은 점점 약해지는데
그런데도 여전히 예전처럼 많은 일을 계획하고 추진하려고 하니
제가 힘이 달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거지요.
그래서 열정이 없고 사랑이 없다고 느끼는 것인데
어쩌면 그 열정과 사랑은 참된 것이 아니고
그러니 없어지는 것이 차라리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분명히 없어지는 편이 낫고
안에서 솟아나고 솟구치는 힘이나 열정이 아니라
외부에서 들어온 참 사랑이 제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불순물이 많은 저의 사랑이 순수하고 참된 사랑이
하느님께로부터 들어오는 것을 막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참고 기다린다는데 저는 참지 못했고,
친절하다고 하는데 저는 무뚝뚝했으며,
뽐내거나 교만하지 않는데 은근히 저를 자랑하며 교만하였고
성내거나 앙심을 품지 않는데 저는 자주 성을 냈으며,
그리고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는 것인데
저의 사랑과 열정은 서서히 스러져왔고 스러져가고 있습니다.
실상 이런 사랑은 남에게도 별 소용이 없지만
무엇보다 제게 정말 아무 소용이 없고 허무만 남기는데
제가 요즘 그것을 실감하고 있는 깁니다.
이 가을에 스러져야 할 사랑은 스러지고
열매 맺지 못하는 사랑도 스러져야 함을
느끼고 깨닫게 된 것이 그나마 제가 맺어야 할
가을 열매인 것 같아 그래도 다행으로 생각하는 오늘입니다.
힘 내세요!
주님이 함께하십니다.
주님의 특은으로 신부님 영육간 건강을 기원합니다.
평화와 선.
김 루도비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