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평화를 빕니다.
전 10년전에 수도자 신학원을 다녔습니다.
어떤때는 제가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특별이 관심이 가지 않는 과목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 발걸음이 그렇게 바쁘지도 않았고,
수업을 들을 때도 제 눈은 교수님께 집중하지 않았고
들을 때도 역시 잘 듣지를 않았습니다.
그룹토의를 할때에도 딱히 별 할말이 없었고
시험을 치러게 될 때에도
제 손은 부지런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어떤 공부라도 열심이 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저의 부족함이었고
제가 반듯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었습니다.
그러다 한 학기가 끝나고 다음 학기가
시작되었을 때 때 마침 제가 관심있는 과목이
있었습니다. 전 그 과목을 듣기 전부터
온통 관심이 쏠렸으며, 제 발걸음은 바빴습니다.
그러고 수업을 들을 때에도 제 눈은 교수님께
집중이 되어 있었고, 귀도 역시 교수님의 말 한마디
를 빼놓지 않고 열심이 들었습니다.
그룹토의를 할때에도 열변을 뿜어내는 말빨이
살아있었고, 시험을 칠 때에도 제 손은
시험답안을 두페이지를 단숨에 써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전 100점 만점 A+를 받았습니다.
들리는 후문에 의하면 제가 졸업후에
교수님께서 학생들에게 제 시험답안보다
더 완벽한 답안은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말그대로 제가 전 학기에 비해서 변하게 된 것입니다.
무엇이 그렇게 변하게 만들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저의 "관심사" 였습니다.
제가 관심있는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대하니
모든것이 변했습니다. 마치 불구자가 치유되어
제 다리와 눈과 귀와 말과 손이 성하게 되어서
고쳐진것처럼 전 그렇게 고쳐졌고 달라졌었습니다.
"관심"이라는것,
그것은 관심이라는 이름의 또 하나의 기적이었습니다.
오늘 1독서에서는"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그때에 다리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하느님께서는 결코 당신 자신에게 아무 관심도 없고
믿지 않는 백성에게 기적을 베푸시지는 않습니다.
백성들에게 일어날 치유의 기적은 결코 하느님 혼자만의
기적이 아닙니다. 백성들이 하느님께 관심을 가지고
다가가 믿게 되었을 때 일어날 기적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쳐주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고쳐주시기 전에
사람들이 먼저 그를 데려옵니다.
그 사람들은 분명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주신다는 소문을
전해듣고 온 사람들일 것입니다.
불구자를 데려온 이들도 어쩌면 가족들이거나 친구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당연이 예수님께 관심을 가지고
먼저 데리고 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먼저 데리고 온
불구자를 예수님께서는 고쳐 주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관심을 온통 예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사랑하기 보다 앞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던 그분께 모든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될 때,
성당을 향하는 우리의 발걸음은 무겁고,
미사에 참여하는 우리의 눈과 귀와 말과 손은
더디어 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관심이 없이 먼저
다가가지 않는 신앙은 머리로서만 이해하는
형식적인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사가 온통 예수님께로 향하게 되면
미사에 참여하는 우리의 발걸음과 눈과 귀과 말과 손은
성하게 되고, 분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던 사랑의 계명 또한
지키게 될 것이며,
이웃에게 관심을 가지고 다가서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과 삶은 변화하게 될 것이며,
성하지 못했던 우리의 마음과 삶은 치유가 되는 기적을
낳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하느님 사랑에 대한 관심과 믿음으로 인해
달라진 우리를 바라본 세상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 구나."
오늘 하루도 우리의 신앙이 예수님께 관심과 믿음을
가지고 다가갔던 신앙이었는지 아니면 형식적인 틀
안에서만 생활하던 신앙이었는지를 되돌아 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전 10년전에 수도자 신학원을 다녔습니다.
어떤때는 제가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특별이 관심이 가지 않는 과목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 발걸음이 그렇게 바쁘지도 않았고,
수업을 들을 때도 제 눈은 교수님께 집중하지 않았고
들을 때도 역시 잘 듣지를 않았습니다.
그룹토의를 할때에도 딱히 별 할말이 없었고
시험을 치러게 될 때에도
제 손은 부지런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어떤 공부라도 열심이 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저의 부족함이었고
제가 반듯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었습니다.
그러다 한 학기가 끝나고 다음 학기가
시작되었을 때 때 마침 제가 관심있는 과목이
있었습니다. 전 그 과목을 듣기 전부터
온통 관심이 쏠렸으며, 제 발걸음은 바빴습니다.
그러고 수업을 들을 때에도 제 눈은 교수님께
집중이 되어 있었고, 귀도 역시 교수님의 말 한마디
를 빼놓지 않고 열심이 들었습니다.
그룹토의를 할때에도 열변을 뿜어내는 말빨이
살아있었고, 시험을 칠 때에도 제 손은
시험답안을 두페이지를 단숨에 써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전 100점 만점 A+를 받았습니다.
들리는 후문에 의하면 제가 졸업후에
교수님께서 학생들에게 제 시험답안보다
더 완벽한 답안은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말그대로 제가 전 학기에 비해서 변하게 된 것입니다.
무엇이 그렇게 변하게 만들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저의 "관심사" 였습니다.
제가 관심있는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대하니
모든것이 변했습니다. 마치 불구자가 치유되어
제 다리와 눈과 귀와 말과 손이 성하게 되어서
고쳐진것처럼 전 그렇게 고쳐졌고 달라졌었습니다.
"관심"이라는것,
그것은 관심이라는 이름의 또 하나의 기적이었습니다.
오늘 1독서에서는"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그때에 다리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하느님께서는 결코 당신 자신에게 아무 관심도 없고
믿지 않는 백성에게 기적을 베푸시지는 않습니다.
백성들에게 일어날 치유의 기적은 결코 하느님 혼자만의
기적이 아닙니다. 백성들이 하느님께 관심을 가지고
다가가 믿게 되었을 때 일어날 기적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쳐주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고쳐주시기 전에
사람들이 먼저 그를 데려옵니다.
그 사람들은 분명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주신다는 소문을
전해듣고 온 사람들일 것입니다.
불구자를 데려온 이들도 어쩌면 가족들이거나 친구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당연이 예수님께 관심을 가지고
먼저 데리고 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먼저 데리고 온
불구자를 예수님께서는 고쳐 주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관심을 온통 예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사랑하기 보다 앞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던 그분께 모든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될 때,
성당을 향하는 우리의 발걸음은 무겁고,
미사에 참여하는 우리의 눈과 귀와 말과 손은
더디어 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관심이 없이 먼저
다가가지 않는 신앙은 머리로서만 이해하는
형식적인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사가 온통 예수님께로 향하게 되면
미사에 참여하는 우리의 발걸음과 눈과 귀과 말과 손은
성하게 되고, 분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던 사랑의 계명 또한
지키게 될 것이며,
이웃에게 관심을 가지고 다가서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과 삶은 변화하게 될 것이며,
성하지 못했던 우리의 마음과 삶은 치유가 되는 기적을
낳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하느님 사랑에 대한 관심과 믿음으로 인해
달라진 우리를 바라본 세상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 구나."
오늘 하루도 우리의 신앙이 예수님께 관심과 믿음을
가지고 다가갔던 신앙이었는지 아니면 형식적인 틀
안에서만 생활하던 신앙이었는지를 되돌아 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