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3일을 클라라 수녀원에서 지내고 왔습니다.
수녀님들께 강의도 해드리고 고백성사도 드리기 위해섭니다.
고백성사 때 역시 관상수녀님들이라 깨어있지 못함에 대한 고백이 많았고
그래서 이 참에 깨어있음이 뭔지에 대한 얘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관상수도자란 하느님을 만나 뵙는 것에 모든 집중을 하는 분들이고,
그러니 당연히 깨어있어야 하는데 늘 깨어있지 못했다고 고백할 수밖에요.
그런데 제가 수녀님들의 생각을 조금 깨기 위한 문제제기를 했습니다.
늘 깨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늘 깨어 있어야 하는 걸까요?
이렇게요.
그런데 우리 인간이 24시간 깨어있을 수는 없잖아요?
물리적으로도 24시간 잠자지 않고 깨어있다가는
정신이 돌아버리거나 죽게 될 것입니다.
의식이나 정신도 24시간 깨어있으면 미칩니다.
24시간을 의식이나 정신이 깨어있고 긴장상태에 있는 것이라면
불가능할 뿐 아니라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깨어있음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늘 깨어있기보다는 언제나 깨어있어야 하고,
늘 깨어있더라도 깨어있어야 할 때 늘 깨어있어야 할 것입니다.
깨어있어야 할 때가 그러면 언제입니까?
말할 것도 없이 주님께서 오실 때인데 그때가 언제입니까?
몇 년, 몇 월, 몇 시로 정해져 있는데 우리가 모를 뿐입니까?
아닙니다. 주님이 오시는 때는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준비되어 있으면 그때가 주님이 오실 때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주님께서는 늘 우리와 함께 계시고
주님께서야말로 늘 24시간 그리고 영원히 우리에게
집중하실 수 있고 집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다른 곳에 정신이 빠져 있다가
정신을 차려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면 주님은
막혀있던 봇물이 보가 열리자마자 쏟아져 들어오듯
우리에게 오시고 우리는 주님을 맞이하게 되는 겁니다.
프란치스코는 이러한 정신을 <기도와 헌신의 정신/영>이라고 하였습니다.
기도와 헌신의 영/정신은 주님의 영을 맞이하는 정신이요 영이라는 거지요.
그런데 프란치스코는 여기서 ‘기도의 영’에 ‘헌신의 영’을 같이 씁니다.
기도의 영이 우리가 무엇을 하든 주님께 늘 깨어있게 하는 것이라면
헌신의 영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 주님께 늘 깨어있으면서도
하느님의 일, 곧 이웃을 위한 봉사에 우리를 헌신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의지로 주님께 늘 깨어 있으려 할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주님께 늘 깨어 있어야 할 것이고, 사랑도 좋지만
기도와 헌신의 영에 의해 주님께 늘 깨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또 충실한 종은 주인의 맡겨진 식솔들을 잘 돌본다고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듯 이웃을 위한 봉사에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인의 식솔들이 맡겨진 종은 종들 중에서 뽑힌 종이고
이런 종을 다른 복음에서는 집사/청지기인 종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사제나 수도자들과 같이 특별한 사람만 집사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모두 주님의 집사들이고 서로에게 집사가 되어야 함을 깨닫고,
깨달을 뿐 아니라 그렇게 살기로 다짐하는 오늘이 되어야겠습니다.
그 때가 주님이 오실 때.."
기도와 헌신의 영이 늘 부족해 주님께 고개 못든 채 숨어들고 싶은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