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1643 추천 수 3 댓글 2
매일미사 말씀 보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을 놓고 주님께서 지난 토요일에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인사 받고 존경 받는 것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인사와 존경 받기 위해서 위선적인 것에 대해서 비판하셨는데

오늘 주님께서는 어리석음과 눈멂에 대해서도 비판하십니다.

 

그렇다면 바리사이와 율법학자의 어리석음은 어떤 것입니까?

사실 그들은 당대에 제일 잘났다고 인정받는 사람들이고

스스로도 그렇게 자처하던 자들이 아닙니까?

 

물론 그렇지요. 오늘날의 권력자나 엘리트들이 대개 다 수재들인 것처럼

그들도 당시에 수재들이었을 텐데 어리석다니 어떤 어리석음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다음의 질타성 질문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어리석고 눈먼 자들아! 무엇이 더 중요하냐?”

그러니까 무엇이 더 중요한지 모르는 어리석음입니다.

 

그런데 너희는 무엇이 더 중요한지 모른다.’고 얘기하면

그들은 아니라고 반박할 것입니다.

자기들은 중요한 것을 알고 그것을 선택하였다고 말입니다.

 

하긴 그들이 중요한 것을 모르지 않고

그래서 그들은 나름대로 늘 중요한 것을 선택하는데

문제는 그 중요한 것이 자기 나름이라는 것이며

자기 나름이기에 진정 중요한 것을 모르거나 잘못 아는 것입니다.

 

첫째로 진정 중요한 것을 모릅니다.

예를 들어 아주 어린애는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돈을 줘도 소용없고 그저 먹는 것이면 충분하며

애한테 준 돈은 즉시 엄마 것이 되고 말지요.

 

이 경우 어리석음은 눈이 먼 것입니다.

눈이 멀면 뭣을 앞에 있어도 보지 못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몰라보기에,

달리 말하면 알아보는 눈이 없기에 중요한 것을 앞에 두고도 보지 못합니다.

 

다음으로 어리석은 것은 비슷하지만 중요한 것을 잘못 아는 것입니다.

덜 중요한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어리석음입니다.

 

앞에서 돈을 예로 얘기했으니 다시 돈을 예로 얘기하면

어린애는 돈의 가치를 몰라 돈을 중요시 여기지 않지만

나이 먹어 돈의 가치를 알게 되면 돈을 너무 중시하여

돈이 최고이고 돈이면 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돈이 다입니까?

돈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해도 안 되지만

돈이면 다라고 하는 것은 더더욱 안 되겠지요.

 

그래서 이 경우도 또 눈이 멉니다.

그러니까 돈이 다이기에 다른 것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더 중요한 것이 있어도 덜 중요한 것인 돈 때문에 보지 못합니다.

 

이 경우 돈에 눈이 멀었다거나 욕심에 눈이 멀었다고 하고,

이 경우 우리는 가치관이 전도되어 있다고도 얘기하지요.

그러니까 어린애의 경우 그 가치를 모르지만

어리석은 어른의 경우는 가치를 알지만 가치가 뒤바뀌어

덜 중요한 것을 더 중요한 거로, 더 중요한 것을 덜 중요한 거로 압니다.

 

그런데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뿐이 아닙니다.

오늘의 우리 어른이라는 사람들도 이렇게 어리석고 눈들이 멀었습니다.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염불과 잿밥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합니까?

내게 염불은 뭐고 잿밥은 뭡니까?

이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해 성찰해야 되는 오늘입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 profile image
    홈페이지 용서받은죄인 2021.08.23 16:58:49
    18년 연중 제21주간 월요일
    (염불과 잿밥 중에)
    http://www.ofmkorea.org/141563

    16년 연중 제21주간 월요일
    (미움은 그래도 희망이 있다.)
    http://www.ofmkorea.org/92795

    13년 연중 제21주간 월요일
    (하늘문은 여닫는 것은 우리가?)
    http://www.ofmkorea.org/55746

    12년 연중 제21주간 월요일
    (미래가 불행한 불행)
    http://www.ofmkorea.org/36440
  • profile image
    홈페이지 이필수다리아 2018.08.27 04:26:38
    감사합니다....^^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20Sep

    한국 순교 성인 대축일-순교자 축일에 하는 저의 반성과 봉헌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오늘도 일찍 일어나 제 작은 방 벽에 등을 기대고 오늘 축일의 독서와 ...
    Date2018.09.20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1607
    Read More
  2. No Image 19Sep

    연중 24주 수요일-스러져야 할 사랑

    이런 마음으로 강론을 쓰면 안 되는데 강론을 쓰고 나면 이런 마음이 바뀌기를 바라며 강론을 씁니다.   남자의 계절인 가을에 가을을 타기 때문인지 또는 기력이 떨어졌기 때문인지 요즘 왠지 기운이 없고 허무감 같은 것이 얼마간 있습니다.   그래...
    Date2018.09.19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3 Views1543
    Read More
  3. No Image 18Sep

    연중 제24주간 화요일

    과부에게 외아들은 그녀의 전부나 다름없었습니다. 유다 사회에서 여자들은 남편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살았고, 그래서 남편이 없는 과부들은 아들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외아들의 죽음이란 과부에게 있어서 스스로 ...
    Date2018.09.18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1 Views634
    Read More
  4. No Image 18Sep

    연중 24주 화요일-병의 치유가 곧 구원은 아니다.

    주님께서 오늘 과부의 외아들을 되살리신 얘기는 과부와 외아들에게 베풀어진 구원 사건으로만 볼 수 있고, 불쌍한 과부이니 구원을 베푸심은 마땅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이들의 구원을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보고 의미를 새겨야 할 사건입니다. ...
    Date2018.09.18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726
    Read More
  5. No Image 17Sep

    성 프란치스코 오상 축일-상처의 치유를 프란치스코에게 배우다.

    요즘 같이 상처를 받고 신음하는 사람이 많은 때에, 프란치스코의 오상 축일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의구심이 들면서 오늘은 이런 관점에서 묵상을 해봤습니다.   참으로 요즘은 상처 받았다는 사람이 많고 그래서 여기저기서 Hea...
    Date2018.09.1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3 Views2412
    Read More
  6. No Image 16Sep

    2018년 9월 16일 연중 24주일-터키 에페소 기도의 집

    2018년 9월 16일 연중 24주일 . 오늘 독서와 복음은 우리 자신의 정체성에 따른 행동과 결단을 요구합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초대 은수자와 수도자들이 근본적으로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입니다.  참된 나의 정체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나는 누구인...
    Date2018.09.16 Category말씀나누기 By고도미니코 Reply2 Views1066
    Read More
  7. No Image 15Sep

    고통의 성모 마리아-마음에 새기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가 서 계셨다.”   어제 성 십자가 현양 축일에 이어 바로 다음 날인 오늘 교회는 고통의 성모 마리아 축일을 지냅니다. 주님의 모든 축일에 짝을 이루는 성모님의 축일이 있는데 주님의 십자가 축일에 해당하는 성...
    Date2018.09.15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920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666 667 668 669 670 671 672 673 674 675 ... 1308 Next ›
/ 1308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