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잘못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사도가 아닌 성인들 중에서
축일로 지내는 성인은 성 스테파노 부제 순교자와
오늘 축일로 지내는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뿐입니다.
성 스테파노는 잘 아시다시피 사도가 아닌 부제였지만
첫 순교자로서 사도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의 초석을
놓은 분이기에 우리 교회가 축일로 지내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는?
스테파노가 그리스도교의 초석이기 때문이라면
라우렌시오는 로마 교회의 초석으로 우리교회가 인정하기 때문이지요.
그의 순교가 로마에서 썩는 밀알이 되어 많은 열매를 맺은 것이
바로 로마 교회의 번성이고 로만 가톨릭의 국교화인 거지요.
그래서 오늘의 전례는 밀알 하나가 썩어 열매를 맺는다는 복음을 읽습니다.
그렇다면 왜 라우렌시오의 순교가 가톨릭을 로마의 국교가 되게 했을까요?
로마의 순교자는 라우렌시오 말고도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데 왜?
그것은 라우렌시오가 자기 목숨 하나 하느님께 바친 것이
그의 사랑의 전부가 아니고 그의 공로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라우렌시오는 자기 목숨만 하느님께 바친 것이 아니라
교회 재산의 관리자인 부제로서 교회가 주는 교회,
무엇보다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는 교회가 되게 했기 때문입니다.
실로 자기 목숨만 바치는 순교는 자기 구원을 이룰 수 있겠지만
다른 사람을 교회로 인도하여 다른 사람까지 구원케 할 수는 없습니다.
교회가 하느님께 받은 것을 나누어주는 교회가 되게 해야
하느님의 교회가 나만이 아니라 모든 이의 교회가 되고
교회가 보편적 구원의 성사가 되는 거지요.
라우렌시오 성인은 실로 순교자일 뿐 아니라
하느님 은혜의 충실한 분배자였습니다.
로마 황제가 교회가 보물을 갖다 바치라고 하였을 때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주님을 따르라는 말씀대로
교회의 보물을 팔아 몽땅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는
이에 분노한 황제에 의해 불에 달궈진 돌판 위에서 순교하였습니다.
죽을 때 그가 한 말과 행위는 참으로 영웅적일 뿐 아니라 영적인 것으로써,
황제가 교회의 보물이 다 어디 있냐고 물었을 때 그는 자기가 보물을
나눠준 가난한 사람들을 데리고 가 이들이 교회의 보물이라고 하였지요.
진정 교회는 하느님 은총과 은사의 분배자이어야 하고,
교회의 관리자는 라우렌시오처럼 하느님 재산의 분배자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교회는 나누는 교회가 아니라
점차 부를 모으고 축적하는 교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은사를 받아 나누는 교회가 아니라
신자들로부터 재물을 긁어모아 축적을 하는 교회가 되어 가는데
그것은 우리 교회에 라우렌시오 같은 관리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저 자신부터 깊이 반성을 하는 오늘이 되고 싶습니다.
우선 세상 것을 소유하는 자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을
받는 제가 되어야겠습니다. 받지 않고는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받는 내가 되기 위해서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그것도 넘치게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하고 믿어야겠지요.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오늘 독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모든 은총을 넘치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언제나 모든 면에서 모든 것을 넉넉히 가져
온갖 선행을 넘치도록 할 수 있게 됩니다.”
다음은 말할 것도 없이 아낌없이 나누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참으로 아끼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보물도 아낌없이 줄 수 있지요.
라우렌시오처럼 가난한 이들이 제가 아끼는 보물들이 된다면 말입니다.
성가 421번을 부르며 오늘을 묵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