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사람의 아들이고, 밭은 세상이다.”
세상이란 말이 있고 세속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제 생각에 세상이나 세속이나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면에서 같지만
세상은 하느님께서 만드신 세상이고 그 안에 하느님이 같이 계시지만
세속은 하느님이 없는 세상이라는 면에서 다릅니다.
그런데 신앙이 있는 우리는 즉시 반문하게 되지요.
하느님은 어디든지 계시고 아니 계신 곳이 없으신데
하느님이 없는 세상이 어떻게 있을 수 있겠느냐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이 없는 곳은 없고 어디든지 다 계시지만
우리 인간이 하느님을 자신과 자기들의 세계에서 쫓아낸 것입니다.
우선 자기 안에서 하느님을 쫓아내는 경우를 보겠는데 프란치스코는
우리 안에 육의 영이 있을 때와 주님의 영이 있을 때의 차이를 얘기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안에 육의 영이 떡하니 차지하고 있을 때는
주님의 영이 우리 안에 들어와 우리가 하느님과 일치하는 것을 거부하지만
만일 주님의 영이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면 하느님과 일치하게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우리 안에 주님의 영을 허하느냐
악의 영을 허하느냐는 우리의 몫이라는 겁니다.
프란스코는 다른 곳에서 기도와 헌신의 영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육의 영과 반대되는 것이 바로 기도와 헌신의 영입니다.
잘못된 생각인지 모르지만 저는 이런 이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잘못된 것이라면 언제든지 그리고 누구든지 옳게 가르쳐 주시길...
모든 존재는 자기의 영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영 중에는 우리 안의 영이 있고 밖의 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안의 영이 육의 영이면 하늘나라를 지향하지 않고
주님의 영을 허하지도 하느님과의 일치를 지향하지도 않습니다.
하늘나라를 지향하지 않기에 철저히 세상에 집착하고
세상에서 사람들의 인정과 상을 받으려고 하며
그래서 어울리는 것도 그런 영들과 어울립니다.
그러니까 악령이나 더러운 영이 내 안에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고,
세속적인 정신의 소유자들과 어울립니다.
이에 비해 기도와 헌신의 영은 주님의 영을 허하고,
그래서 주님의 영에 이끌려 살아가게 됩니다.
프란치스코는 주님의 영에 이끌리는 것을 이렇게 얘기합니다.
“주님의 영은 육이 혹독한 단련과 모욕을 당하기를 원하며,
천한 것으로 여겨지고 멸시받고 수치당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겸손과 인내, 그리고 순수하고 단순하며 참된, 영의 평화를 얻도록 힘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항상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신성한 두려움과
신성한 지혜와 신성한 사랑을 얻기를 갈망합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는 우리가 싫어하는 것들, 곧
단련, 모욕, 멸시, 수치 같은 것들을 당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겸손하고 인내하며 순수하고 단순하며 영의 참된 평화를 얻으려 애쓰고
그럼으로써 삼위일체 하느님의 지혜와 사랑을 얻기를 갈망하고 애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우리는 내 안에 어떤 영이 있는지
그래서 주님께서 밀을 뿌리게 허하는지
악령이 가라지를 뿌리게 허하는지
성찰하고 식별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