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 던져 버려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외눈박이로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단호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야고보서는 욕심을 부리고 호의호식하며 남을 불행케 한 삶 때문에
지옥에 갈 거라는 얘기를 하고 있으며 복음은
지체가 죄를 짓게 하거든 그 지체를 가지고 지옥을 가느니
차라리 그것을 잘라버리고 천당을 가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웃느라 생각해볼 때 천당에는 온통
애꾸눈, 절름발이, 손 병신 등 장애인들만 가득할 거라고 생각했고,
진지하게는 이것을 문자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옛날 교부 오리게네스는 하도 성욕이 자신을 괴롭히고
죄짓게 하기에 오늘 주님 말씀대로 자기 성기를 거세해버렸고
그래서 그는 훌륭한 학자요 삶을 살았지만 성인이 될 수 없었지요.
그러므로 오늘 말씀은 글자 그대로 실천하라는 말씀이라기보다는
죄의 뿌리를 단호하게 잘라내라는 말씀으로 이해해야겠지요.
그래서 저는 욕구가 욕망이나 욕심으로 자라지 않게
단호하게 자름에 대해서 오늘 묵상해봤습니다.
우리에게는 욕구가 있고 욕망이 있으며 욕심이 있습니다.
다 <욕欲>과 관련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 욕이란 결핍의 존재인 인간이 그 결핍을 채우려는 것이고,
결핍이 있을 때 이 욕이 부족한 것을 구求하는 것이 욕구欲求입니다.
예를 들어 먹은 것이 다 소화되고 위가 비었을 때
음식에 대한 욕구가 생기는데 이것을 우리는 식욕이라고 하지요.
그리고 당연히 배가 부르면 욕구는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이 욕구는 나쁜 것이라고 할 수 없고
결핍의 인간이 살기 위해서 있어야 하는 것이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으로 하느님께서 그리 하신 거지요.
문제는 이 욕구가 욕망慾望이나 욕심慾心으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욕망이나 욕심은 욕구를 방치하여 그리 된 것이며
그러므로 우리는 이 욕구가 욕망이나 욕심이 되지 않도록
초등단계에서, 곧 욕구의 단계에서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우리가 육의 정신을 버리고 기도와 헌신의 영을 지님으로써
우리 인간의 욕구가 욕망과 욕심으로 자라지 않고,
갈망과 열망으로 자라고 열정과 사랑으로 자라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욕구에 어쩔 수 없다고 지고 들어가서는 안 되고,
프란치스코의 말대로 자기의 지배 아래 있다고 생각하고 다스려야 합니다.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권고하지요.
“죄를 지을 때나 해를 입을 때 자주 원수나 이웃을 탓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래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육체를 통해서 죄를 짓게 되는데
누구나 그 원수, 즉 육체를 다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지배 아래 넘겨진 그러한 원수를 항상 손아귀에 집어넣고
그에게서 슬기롭게 자기 자신을 지키는 그런 종은 복됩니다. 이렇게 하는 한
볼 수 있건 볼 수 없건 그 어떤 원수도 그를 해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 오늘도 저의 수많은 욕구들이 죄가 되지 않도록
주님의 영을 보내시어 저희를 도와주소서!
저를 도와주소서~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