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10월의 끝에서 두 번째 주일을 전교주일로 정하고,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고 미사를 봉헌합니다.
그런데 전교와 민족들의 복음화는 사뭇 느낌이 다릅니다.
전교傳敎는 천주교를 전한다는 의미로 읽힐 때
공격적인 교세확장의 의미가 됩니다.
일부 잘못된 개신교가 국내외에서 <땅 밟기>를 한 것과 같은 거지요.
제가 아는 것이 맞는지 모르지만
<땅 밟기>란 여호수아가 가나안의 도성들을 점령할 때
예리고 성을 며칠 간 밖으로 돌다가 어느 순간 함께 소리치자
그 성벽이 무너지면서 점령하게 되었다는 그 정복 신앙을 흉내 내어
일부 잘못된 개신교 목사와 그 신자들이
불교의 절이나 이슬람 모스크에 가서 같은 행위를 하는 것이지요.
전교라는 것이 이런 것이 되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교세 확장이 아니라
올바른 가르침, 곧 진리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미사의 본기도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진리를 깨달아 구원되기를 바라시는 하느님”
물론 여기서 진리란 하느님의 진리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하신 진리이며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리이시기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그리스도교가 독점하고 있다고 생각지 말아야 하고
다른 종교도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인정하며 수용해야 하지만
다른 종교의 진리를 인정하고 수용한다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주신 진리를 부정하거나 허무는 것이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왜냐면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는 다른 종교의 진리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진리를 다 수용하고, 포용하고, 종합하는 더 큰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다른 진리를 수용하지도 포용하지도 못하는 진리는 진리도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는 더더욱 아니지요.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전한다고 하는 것은
다른 종교나 문화의 진리를 포용하면서도 더 완전한 진리를 전하는 겁니다.
그러니 다른 종교문화를 수용하고 포용하는 품/여유도 없고 자신도 없다면
선교나 전교는 물론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해 나서지도 말아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민족의 복음화건 세상의 복음화건 복음화 활동에 나서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복음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이 있는 자들이고,
그렇지만 자부심과 자신이 있다는 것이 교만과 우월감의 표출은 아닙니다.
너무 복되게도 복음으로 구원 받았고 그래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겸손하게 그 행복을 나누는 것이요, 사랑 넘치는 나눔인 것이지요.
저는 진정 저의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대단히 유명하지도 유식하지도 않으셨지만 저의 부모님이
가톨릭 신앙을 먼저 받아들이셨고 그렇게 키워주셔서
비록 한 때 방황은 있었어도 이 복된 삶을 살 수 있게 해주셨으니 말입니다.
반대로 저는 제 후손들을 볼 때 안타까움과 아쉬움과 부끄럼이 있습니다.
모두 신자이긴 하지만 제가 복음적 생활의 모범을 잘 보여주지 못해서인지
수도자가 된 놈도 없고 신앙생활에 아주 열심인 것 같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더 부끄러운 것은 저로 인해서 영세를 받았다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분명 제가 열심히는 살았고 제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았는데
저처럼 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런 삶은 아니었던 것 같고
그래서 실패한 인생인 것만 같아 사실 요즘 저는 심각하게 반성합니다.
나의 무엇이 복음적 삶과 증거에 있어서 문제인지.
제 인생이 실패라면 사랑의 실패임이 틀림이 없고
사랑의 실패라면 겸손의 실패임도 분명한데
어쩌다가 이리 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민족의 복음화 주일인 오늘 저의 복음화를 위해 먼저 고민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