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이 집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교회로서 진리의 기둥이며 기초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와서 몇 차례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그리하여 믿음의 공동체가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공동체가 어찌 세상에 믿음을 주지 못하는 겁니까?

진정 믿음의 공동체라면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우리의 공동체는 참된 믿음의 공동체가 되지 못한 것인데

그렇다면 우리의 공동체는 참된 믿음의 공동체가 되지 못한 겁니까?

 

세상에 믿음을 주기 전에 우리가 서로 믿지 못하고

서로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서로 믿지 못하고 서로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는 공동체가

세상에 믿음을 주지 못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냐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서로 간에 믿음을 주지 못하고 믿음이 없는 것은

공동체 내부의 문제일 뿐 세상에 믿음을 주는 것과 상관이 없을 것 같지만

공동체 안의 불신이 공동체 밖의 불신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받는 사람이 사랑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사랑을 받는 사람은 그 사랑으로 나가서도 사랑할 뿐 아니라

사랑에 배신하지 잃지 않기 위해 더 사랑에 힘쓰는 것처럼

서로 간에 믿음이 있는 공동체는 그 믿음 때문에

자신감을 가지고 세상 가운데서 당당히 살아갈 뿐 아니라

그 믿음에 배신하지 않기 위해 믿음직하게 살아 갈 겁니다.

 

그런데 사실 믿을 만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서로 믿지 못하는 것은 나도 그렇고

같이 사는 형제들도 믿기에 너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믿는다는 것은 크게 믿을만한 사람이어야 한다면

믿을 수 없고 작게 믿으면 믿을만한 사람이 많습니다.

저를 보면 대부분의 경우

교만 때문에 믿음의 욕심이 너무 커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에 믿음을 주지 못하는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우리가 하느님께 우리 믿음을 두지 않고

사람에게 믿음을 두려고 하거나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 같습니다.

사람에게서 믿음을 찾기에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없다면 무신론이 아닙니까?

 

바오로 사도는 살아계신 하느님의 교회라는 표현을 쓰는데

교회 중에는 하느님이 죽어있는 교회도 있다는 뜻이지요.

하느님이 죽어있고 사람만 살아 설치는 교회라는 뜻이기도 하고요.

 

사람이 설치는 곳에 진리가 없습니다.

사람마다 다 자기가 옳다고 하기 때문인데

사람의 진리는 매우 주관적이고 무엇보다 욕망에 휘둘립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진리가 아니라 자기가 진리라는 왜곡이,

다른 말로 자기합리화가 판을 칩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하느님의 진리가 기초와 기준과 기둥이 되지 않으면

자기의 진리, 자기합리화가 교회와 공동체 안에 난무하여

도대체 신자들은 누구를 믿고 따라야 하는지 모르고,

신자들이 그러하니 세상은 더 믿을 수 없게 되겠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진지하게 성찰해야 합니다.

우리 집, 우리 공동체, 우리 교회는

과연 하느님의 집인가, 인간의 집단인가?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살아계시는가, 죽어계시는가?

하느님의 진리가 우리의 판단과 행동에 기초와 기준과 기둥이 되는가?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28Nov

    연중 34주 화요일-허무를 볼 수 있는 눈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 인간...
    Date2017.11.28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3 Views1631
    Read More
  2. No Image 27Nov

    연중 34주 월요일-따듯한 눈길과 허영의 눈길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오늘 복음은 아주 짧은 얘기이고 주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도 명확합니다. 부자의 봉헌이 과부의 봉헌보다 액수로는 크지만 정성이나 사랑으로 치면 과부가 더 크다는 말씀입니다.   ...
    Date2017.11.2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446
    Read More
  3. No Image 26Nov

    그리스도왕 대축일

     길을 가다가 노숙자를 봅니다.  며칠 씻지 않아서 머리는 지저분하고  한동안 먹지 못해서 얼굴이 야위어 있습니다.  만약에 그가 예수님이라면  그를 만났을 때 우리의 행동은 어떠할까요?  다가가서 당장 씻게 해 주고  식사를 대접할 것입니다.  ...
    Date2017.11.26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593
    Read More
  4. No Image 26Nov

    그리스도 왕 대축일-그리스도 왕의 왕직을 살아야 할 우리라면

    그리스도 왕 축일하면 부정적인 느낌이 제게 있습니다. 왜냐면 왕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느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왜 그런 부정적인 느낌이 있느냐 하면 말할 것도 없이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한 왕들은 좋은 왕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Date2017.11.26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4 Views1156
    Read More
  5. No Image 25Nov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오늘 복음에 나타난 질문에 답을 하기에 앞서  우리는 그 질문을 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먼저 볼 필요가 있습니다.  복음은 그들을 사두가이라고 표현하고 있고  그들은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부활이 없다고...
    Date2017.11.25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442
    Read More
  6. No Image 25Nov

    연중 33주 토요일-우리의 인연도 다 끝이 난다고 하는데...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어제 오늘 저는 수련자 강의 차 수련소에 와 있습니다. 서원 형제들 모두 공동 피정에 가는 관...
    Date2017.11.25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310
    Read More
  7. No Image 24Nov

    연중 33주 금요일-기도할 수 있는데 걱정하면 그것이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시어 물건을 파는 이들을 쫓아내셨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없앨 방법을 찾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처구니없는 일을 자주 경험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을 내가 저지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 성...
    Date2017.11.24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496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721 722 723 724 725 726 727 728 729 730 ... 1310 Next ›
/ 1310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