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1729 추천 수 2 댓글 2
매일미사 말씀 보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어제 베드로의 질문에 이어 오늘 바리사이의 질문은 질이 좋지 않습니다.

어제는 어떻게 하면 용서의 의무를 최소한으로 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소극적인 마음에서 나오는 질문이기에 나쁘다면

오늘은 질문의 의도 자체가 주님을 시험키 위한 거기에 나쁘기도 하지만

그 내용도 이혼을 전제로 이혼을 해도 되는지 묻는 것이기에 나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같이 살아보려는 자세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문제 안 되게 버릴 수 있을까 하는 자세이니 참 고약하지요.

이는 마치 지금 쓰고 있는 스마트폰을 버리고 새 것을 사려는 아이가

뭐라고 이유를 갖다 붙여야 부모가 OK할지 그 꾀를 묻는 것과 같습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아내는 버리거나 소유할 수 있는 물건과 같지 않고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이기에 소유할 권리도 없지만

버릴 권리도 인간에게 있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결혼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관계는 선택이 아니라 인연이라는 것이

천주교뿐 아니라 모든 종교의 가르침입니다.

불교조차도 남녀가 부부로 맺어지는 것은

수천 겁의 전생의 인연이 모여 이루어지는 거라고 가르치고

천주교는 이 인연을 하느님께서 맺어주신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니 혼인을 인연이 아니라 선택일 뿐이라고 하면 신앙이 없음이요,

인연으로 여기고 그 인연을 소중히 하면 신앙이 있는 것이고

소중히 여기면 여길수록 신앙이 더 깊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여기서 생각게 됩니다.

좋아하는 것과 소중히 여기는 것의 차이와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것과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것의 차이를.

 

무엇을 좋아하든 사람을 좋아하든 좋아할 때는 그것을 소중히 여깁니다.

그러나 좋아하는 것이 싫어질 때 소중하던 것은 쓰레기가 되고

그래서 버려버리게 됩니다.

그런데 소중한 것은 이렇게 싫고 좋음에 좌우되어서는 안 되고

그 자체로서 소중한 것이어야 하지요.

 

저는 저로서 소중하고 존귀하지

누구에 의해 소중함과 존귀함이 좌우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석가모니의 깨달음입니다. 그래서 석가모니는

깨달은 다음 제 일성으로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 했지요.

 

그런데 이것은 나만 존귀하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로서 존귀한 것처럼 너는 너로서 존귀하다는 뜻이며

인간은 누구나 다 고유하고 그로서 존귀하다는 뜻인데

제 생각에 이런 고유함과 존귀함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런데 같은 사랑일지라도 하느님 사랑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한 인간을 진정으로 소중히 그리고 존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실 뿐 아니라

소중히 여기시기에 관계도 사랑으로 맺어주십니다.

남녀가 결혼을 하는 것은 서로 사랑하여 결혼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하느님이 중매쟁이가 되어 결혼한 것이고 하느님의 사랑/축복 하에

사랑이 승화되고 완전해지기 위해 결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이 중매쟁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 신앙이고,

하느님이 가장 완벽한 중매쟁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 신앙이며,

그러기에 하느님이 지금의 이 배우자를 맺어주신 뜻이 무엇인지

그 뜻을 찾고 따르며 사는 것이 신앙인의 결혼생활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묵상하는 오늘이 되어야겠습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08Nov

    연중 제31주간 수요일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 십자가란  우리 각자가 지닌 자신의 나약함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 십자가를 벗어버리고 싶지만,  내 안에 그러한 나약함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우리가 인간...
    Date2017.11.08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1 Views553
    Read More
  2. No Image 08Nov

    연중 31주 수요일-사랑의 미명하에 악인 사랑

    오늘 독서와 복음은 얼핏 보면 서로 상충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복음은 자신과 부모자식과 형제자매를 미워하라고 하는 반면 독서는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니 말입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
    Date2017.11.08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311
    Read More
  3. No Image 07Nov

    연중 31주 화요일-소명을 위한 은사

    우리는 수가 많지만 그리스도 안에 한 몸을 이루면서 서로 지체가 됩니다. 저마다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총에 따라 서로 다른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심오한 그리스도의 신비체 지체론입니다. 제가 적극 동감하고 아주 좋아하며 즐겨 인...
    Date2017.11.0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424
    Read More
  4. No Image 06Nov

    연중 제 31주간 월요일 -하느님 섭리에 대한 고민-

    T.평화를 빕니다.   우리 천주교 신자들은 일상생활 안에서 ‘하느님 섭리에 내맡긴다 혹은 하느님께 의탁한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 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의 섭리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지 한번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우선 우리가...
    Date2017.11.06 Category말씀나누기 By일어나는불꽃 Reply0 Views885
    Read More
  5. No Image 06Nov

    연중 31주 월요일-사랑은 그 자체로 보답이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주님께서는 사랑을 실천하면서 보답을 바라지 말라 하십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보답을 바라며 하는 사랑...
    Date2017.11.06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072
    Read More
  6. No Image 05Nov

    연중 제31주일

     얼마 전 어느 자매님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것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에 갔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아이들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서로 처음보는 아이들의 첫 마디는  인사도 이름을 묻는 것도 아니고,  나이가 몇 살인지 묻는...
    Date2017.11.05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508
    Read More
  7. No Image 05Nov

    연중 제 31 주일-지배자가 아니라 인도자

    오늘 독서와 복음은 사제들에게 하신 주님의 말씀이고, 사제와 같이 지도자들인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자, 이제 사제들아, 이것이 너희에게 내리는 명령이다.”   그런데 이들이 잘못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아주 신랄하게 비판하십니다. 말라...
    Date2017.11.05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1136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726 727 728 729 730 731 732 733 734 735 ... 1312 Next ›
/ 1312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