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1490 추천 수 2 댓글 0
매일미사 말씀 보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고,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

 

오늘 주님께서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고 하시고,

가족 간에 갈라서게 하기 위해 오셨다고 하시는데

칼로 관계를 끊어 갈라서게 하고 원수가 되게 하시겠다는 말씀이지요.

 

여기서 저는 오늘 주님 말씀을 조금 비틀어서 묵상해봤습니다.

주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것이 우리가 서로 갈라서는 것인지

아니면 맞서는 것인지 생각해 본 것입니다.

 

제 생각에 주님께서는 갈라서는 것보다 맞서기를 더 바라실 겁니다.

주님의 적극적인 주문은 갈라서는 것보다는

우리가 맞서는 게 아닐까 생각한 겁니다.

 

갈라서는 것은 쉬운 것이고 사랑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원하신 것이 사랑이고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것 아닙니까?

 

맞서는 것이 사랑이 아닌 사랑은 맞서지 못합니다.

제 생각에 맞서도 사랑인 사랑이 맞설 수 있고

맞설 수 있는 사랑이라야 사랑입니다.

 

물론 사랑의 맞섬과 달리 적대적인 맞섬도 있지만

사랑의 맞섬은 그가 원수이기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에 맞서는 것이고 그래서 그를 위해 맞서는 것이지요.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그가 잘못된 길을 가려고 합니다.

그럴 때 너는 그 길을 가냐, 나는 이 길을 가련다!‘하고 갈라선 다음

그 길을 가게 버려 둘 수도 있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막아서는 거지요.

 

맞서는 것은 마주 서는 것이니

부닥치고 싸우기 싫어 돌아서는 것보다 사랑이고,

그러기에 갈라서는 것보다는 맞서는 것이 더 사랑입니다.

 

그런데 막아서고 맞섰는데도 끝내 그가 그 길을 갈 뿐 아니라

오히려 그가 더 큰 힘으로 내 가는 길을 막고 못 가게 하다면

그때는 어쩔 수 없이 갈라서야 하고 내 길을 가야 하겠지요.

 

그런데 오늘 주님 말씀의 더 큰 맥락은 주님을 따름입니다.

주님 없이 그저 네 길과 내 길이 다른 것이 아니라

나의 길은 주님을 따르는 길인데 그는 주님을 따르지 않는,

그야말로 그만의 길이기에 갈라서는 것입니다.

 

너무도 서로를 사랑하는 남녀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도 사랑하지만 하느님을 더 사랑하기에

같이 하느님을 따르는 길, 곧 수도자의 길을 같이 가자고 하지만

남자는 여자는 사랑해도 하느님은 알지도 못하고 사랑하지도 않습니다.

여자는 여기서 결단을 내려야만 하는데 결국 갈라서는 길을 택할 겁니다.

 

이때 여자는 불행합니까?

이때 여자는 사랑을 잃은 겁니까?

 

아닙니다.

마침내 배가 항구에 안전하게 정착하듯

영원한 사랑에 정착을 하고 영원한 행복을 얻은 거지요.

 

아무튼 맞서든 갈라서든 사랑이 되어야 함을 묵상하는 오늘입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09Oct

    연중 27주 월요일-하느님을 피하는 것이 가당키나 하나?

    “요나는 주님을 피하여 타르시스로 달아나려고 길을 떠나 야포로 내려갔다.”   요나서는 여러 번 읽었고 그래서 다른 예언서와 예언자보다 잘 알지만 전에는 놓쳤던 구절이 오늘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니, 전에도 눈으로는 읽었고 하느님의 부르심을 피...
    Date2017.10.09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429
    Read More
  2. No Image 08Oct

    연중 제27주일

     오늘 복음 말씀에 나타나는 포도밭 임자는  하느님을 뜻합니다.  포도 밭 임자가 소출을 받기 위해서 종들을 보내다가  마지막에 아들을 보낸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하느님과 멀어져 가는 세상을  다시 당신께로 부르시기 위해서  예언자들을 보내시...
    Date2017.10.08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1 Views456
    Read More
  3. No Image 08Oct

    연중 제 27 주일-하느님 사랑의 공동 경작자

    “어떤 밭 임자가 포도밭을 일구어 소작인들에게 주고 멀리 떠났다. 포도 철이 가까워지자 자기 몫의 소출을 받아오게 종을 보냈다.”   우리는 3주 계속해서 포도밭 비유를 듣습니다. 연중 25주일에는 포도밭에 일찍 나와 일한 사람에게나 늦게 나와 일...
    Date2017.10.08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1231
    Read More
  4. No Image 07Oct

    연중 26주 토요일-우리가 기뻐해야 할 것

    오늘 복음의 얘기는 루카복음에만 있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공관복음에는 열두 제자의 파견만 있는데 루카복음에서는 여기에 일흔두 제자의 파견 얘기를 덧붙이는 겁니다.   왜 덧붙였을까요? 제 해석입니다만 일흔두 제자의 파견 얘기를 덧붙인 ...
    Date2017.10.0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373
    Read More
  5. No Image 07Oct

    연중 26주 토요일-우리가 기뻐해야 할 것

    오늘 복음의 얘기는 루카복음에만 있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공관복음에는 열두 제자의 파견만 있는데 루카복음에서는 여기에 일흔두 제자의 파견 얘기를 덧붙이는 겁니다.   왜 덧붙였을까요? 제 해석입니다만 일흔두 제자의 파견 얘기를 덧붙인 ...
    Date2017.10.0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442
    Read More
  6. No Image 06Oct

    연중 26주 금요일-나는 지금 회개하지 않고 우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주 우리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오늘 바룩 예언서는 하느님 말씀을 듣지 않았다고 세 번이나 뉘우칩니다. 바룩 예언자는 이렇게 얘기하지만 오늘 복음에서 불행선언을 당한 코라진이나 벳사이다 사람들은 듣지 못했다고 할 것입니다.   ...
    Date2017.10.06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321
    Read More
  7. No Image 05Oct

    연중 26주 목요일-내가 가는 것이 아니어야.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셨다.”   오늘 복음을 읽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말이 <당신에 앞서>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묵상하면서 든 생각은 내가 오늘 ...
    Date2017.10.05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1142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737 738 739 740 741 742 743 744 745 746 ... 1318 Next ›
/ 1318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