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평화를 빕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연의 섭리를 통하여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생태신학자들과 영성가들에게서는 예수님께서 최초의 생태와
영성신학자라고 얘기를 합니다. 저 역시 자연을 좋아하고 그 비유를 통해서
묵상하는 것을 좋아하기에 몇 년전에 낙엽을 쓸면서 묵상하게 된
네 가지 비유를 한번 떠올려 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마당을 쓰는 사람이 쓸어 모은 낙엽들을
모아 쓰레받이에 담아 버리고자하는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낙엽들은 온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만약 낙엽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날아다닌다면 낙엽을
쓸어 담아 버릴 수가 없는 것처럼,
우리들도 하느님 앞에서 온전히 내어 맡기고 머물러 있을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을 당신의 도구로써 당신의 뜻대로
이 세상에서 쓰임새 있게 활용을 하실 것입니다.
낙엽은 하느님께 온전히 내어맡기고 도구로써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낙엽을 쓸 때 너무 깨끗하게 쓸려고
하거나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차피 한 자락의 바람에 또 다시 낙엽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삶을 살아갈 때에도 어떠한 일에서나 목표를 이룰려고 할 때에
완벽주의에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차피 삶에서 세월의 바람이 불어올 때에 누구든지 큰
업적을 이루어 놓았다 할지라도 예외 없이 빈손으로 가기 마련이며,
이루어 놓은 업적도 다시 무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낙엽은 사람들에게 지나친 집착에서 벗어나
여유롭게 행복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넓은 마당만을 보면서 낙엽을 쓸 때에는
끝이 보이지 않고 멀게만 느껴지지만 지금 서있는 자리에서
조금씩 쓸어 나가면 곧 끝나게 됩니다.
우리들도 삶을 살아갈 때 큰 목표만을 생각하고 살아가게
되면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하찮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지금
서있는 자리에서 조금씩 목표를 이루어 나갈 때에는
큰 목표를 이룰 수가 있습니다. 낙
엽은 처음부터 큰 것을 이룰려는 욕심을 버리고 지금 있는
자리에서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쓸어 모은 낙엽들을 거름으로 주기 위해서
밭에 뿌릴 때 낙엽들은 땅에서 썩고 그 땅에서 새로운 생명들이
태어나고 자라나게 됩니다. 썩어서 죽은 낙엽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되는 것입니다.
땅에서 거름으로 썩는 낙엽들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에서 죽고
부활하여 우리들에게 새 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밀알의 비유를 통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죽음과 부활은 현세에서의 죽음과 종말 때의
부활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금 현세 안에서 세상의 가치와 기준에 대해서 죽고
하느님의 뜻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 살아갈 때에 우리는
죽음과 부활체험을 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분들은 세상의 가치와 기준에 맞춰서 신앙 때문에 힘겨운
삶과 고통스러운 삶을 살지 않았을 수도 있었지만 참 행복과 기쁨을
주는 하느님의 뜻과 신앙에 모든 것을 바쳤기에 그분들의 삶은
이미 부활의 삶을 살았다고 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쓸어 모아 놓은 낙엽들을 거름으로 쓰게 되어서 척박한 땅에서
수 많은 생명들을 자라게 할 수 있게 된 기름진 땅이 된 것처럼
오늘 기념하는 순교자들의 숭고한 삶과 죽기까지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순교의 삶은 당시 조선이라고 하는 척박한 땅에서
거름이 되어 오늘날 그분의 후손들인 우리들에게 한국교회라고
하는 새 생명의 싹을 기름진 땅에서 자라게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거름이 되어 식어가고 있는 한국 가톨릭교회에서
미래 후손들에게 신앙의 새 생명의 싹을 자라게 할 차례입니다.
그분의 강한 활동의 능력 안에서 우리들 자신 스스로가
거름이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 기념하는 순교자들을 기억하며 신앙 선조들의
신앙과 용기를 되새겨 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