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관상의 중요함을 많이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 부활 대축일을 맞아서도 부활 관상과 함께 빛 관상을 하게 되는데
그토록 우리에게 어둠과 혼란을 주는 트럼프와 네타냐후 같은 인간을 생각하며
더더욱 빛 관상을 이 부활 대축일에 하게 됩니다.
물론 트럼프와 네타냐후뿐이 아닙니다.
힘을 지닌 자들은 거의 대부분 힘을 자기를 위해 쓰기에 세상을 어둡게 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우리와 세상을 어둡게 하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어둠이 빛보다 더 힘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여 우리 마음을 우울하게 하면서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믿음을 흔들며 우리 믿음의 눈을 어둡게 합니다.
이렇게 믿음이 흔들리며 우리 믿음의 눈이 어두워지면 희망의 눈도 어두워집니다.
이 어둠이 나아지지 않고 계속될 것이라고 절망하게 되고
그래서 빛으로의 희망을 전혀 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시선이 어둠에 사로잡히고 다른 데 눈을 돌리지 못하게 됩니다.
실로 우리는 매일 중동이 어떻게 되나 거기에 시선이 온통 가 있고 신경을 씁니다.
이런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화가 났습니다.
이렇게 만드는 그들에게 화가 났고,
이들에게 이렇게 당하는 내게 화가 났습니다.
이 자들이 온 세상을 이렇게 어둡게 해도 되나? 화가 난 것이고,
이들에 의해 내가 이렇게 어둡게 된 것 때문에 내게 화가 난 것인데,
이들이 노리는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니겠나? 하는 반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지지 않으려면 그럴수록 빛의 관상을 하고,
더 나아가 빛을 발산해야겠다는 빛의 오기가 있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제는 빛의 예식을 할 때 하느님께서 전례의 은혜를 제게 베풀어주셨습니다.
화로의 불에서 불을 따 부활초에 붙일 때 이런 생각이 제 안에서 올라왔습니다.
나는 어둠 가운데서 최초를 불을 붙이는 사람이다.
그러니 더 이상 어둠과 어둡게 하는 사람을 탓하지 말고,
하느님 불로부터 불을 받아 빛과 열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렇게 빛의 오기를 부렸더니 한동안 제 안에 있던 어둠이 사라지고
빛이 부활이 제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그리스도 우리의 빛!’ 다음에 부활초에서 빛을 받아 참석자에게
빛을 나눌 때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모두 세상에 불을 붙이는 사람,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빛의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우리와 세상의 어둠은 그들의 탓만이 아닙니다.
그들이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화만 낼 뿐 어쩔 수 없다고 하며
패배주의적으로 어둠에 안주한 측면이 없지 않고 기도도 열심히 하지 않았지요.
기도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것은 하느님께 눈을 돌리지 않았다는 표시입니다.
우리는 내게든 네게든 인간에게 화를 낼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기도했어야지요.
우리가 하는 것을 보면 같이 기도해야 할 것을 같이 화를 내고 있습니다.
화를 내면 지는 것인데 같이 화를 내면 같이 지는 것에 불과한 것이지요.
여기서 우리의 깊은 성찰이 필요합니다.
나든 너든 인간을 보면 우리에게는 어둠밖에 없고 화낼 것밖에 없습니다.
빛이신 하느님 없이 서로만 보면 어둠밖에 없고 화낼 것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나와 우리 공동체가 어둡다고 생각될 때 얼른 눈을 하느님께 돌려
빛 관상을 의지적으로 해야 하고 화낼 시간에 기도해야겠습니다.
부활 축하 드립니다.
요즘 많이 힘드시더라도
이럴 때일수록 하느님께 더욱 매달리며
어려움을 같이 그리고 하느님 안에서 해결해나가야겠습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