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는 저마다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하늘나라의 슬기로움에 대해 비유로 가르침을 받는데
어제는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의 비유이고 오늘은 슬기로운 처녀의 비유입니다.
그런데 둘 다 하늘나라의 슬기로움이지만
종의 슬기로움보단 처녀의 슬기로움이 한 수 위인 것 같습니다.
종은 의무를 다하는 슬기로움이지만 처녀는 사랑의 슬기로움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면 다 필요 없습니다.
충실할 필요도 없습니다.
깨어 있을 필요도 없습니다.
사랑하면 충실함도 저절로이고 깨어 있음도 저절로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의 일에 불충실할 수 없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늘 깨어 있어 자면서도 깨어 있습니다.
제가 너무 자신만만한 소리 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저는 하느님께도 이웃에게도 깨어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이고 사랑하는 것만큼 그러합니다.
딴 일이라고 생각되는 일을 할 때도 그러하고,
제 일이라고 생각되는 일을 할 때도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지 않다면 사랑하지 않는 것이고,
충실치 않다면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러므로 어제 종의 슬기로움을 얘기한 다음
오늘 처녀의 슬기로움에 대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뜻은
의무를 다하는 종에서 사랑하는 신부/애인으로 신분 상승할 기회를 주심이고,
하느님을 사랑함으로써 하느님 사랑의 짝이 되는 신성(神性)에의 초대입니다.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지만
내가 개를 사랑한다는 것은 개를 내 사랑의 짝으로 삼는 것이잖습니까?
개의 사랑을 받길 원하는 것도 개를 내 사랑의 짝으로 삼는 것인 것처럼.
하느님께선 우릴 당신 사랑의 짝으로 삼고 슬기로운 처녀가 되라고 초대하시고
우린 애인이 되어 달라고 초대받은 신부들인데 어쩌시겠습니까? 받아들이겠습니까?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