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25,1-13
열 처녀는 모두 ‘등’을 들고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똑같아 보였습니다.
차이는 단 하나, ‘기름이 있느냐 없느냐’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기름’은 무엇일까요?
바로 오늘 기리는 성 아우구스티노가 이를 풀이해 주었습니다.
그는 ‘등불’은 ‘남이 볼 수 있는 겉의 행실’이고,
‘기름’은 ‘속에 감춘 참된 사랑(자비)’이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기름은 빌려줄 수 없다’는 말이 깊습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행실은 흉내 낼 수 있어도,
‘마음속 참된 사랑’만은 누구도 대신 채워 줄 수 없습니다.
사랑은 ‘저마다 자기 그릇에’ 담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겉)’은 있었지만
‘기름(속의 사랑)’이 없었기에,
정작 신랑이 왔을 때 등이 꺼지고 말았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자신이 바로 이 비유를 살았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등은 들었으나 기름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름다움과 사랑을 엉뚱한 데서 찾아 헤매며,
그의 등불은 꺼질 듯 깜빡였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그는 참된 ‘기름’ ―하느님을 향한 사랑―을 만납니다.
“늦게야 당신을 사랑하였나이다,
이토록 오래되고 이토록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
당신은 제 안에 계셨건만, 저는 밖에서 당신을 찾았나이다.”
그렇게 그의 꺼져 가던 등불은 ‘사랑의 기름’으로 되살아나,
‘혼인 잔치(하느님과의 일치)’의 기쁨으로 들어갔습니다.
‘신랑이 늦어진다’는 말도 마음에 남습니다.
기다림이 길어질 때 우리는 졸기 쉽습니다.
그러나 핵심은 ‘잠들지 않는 것’보다
‘기름을 미리 채워 두는 것’입니다.
곧, 평소에 ‘사랑’을 차곡차곡 길어 두는 것입니다.
위기의 순간에 사랑은 갑자기 ‘빌려 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기쁨의 관점에서 보면
오늘 복음은 분명합니다.
등불을 끝까지 밝히는 것은 ‘사랑의 기름’이고,
그 등불을 들고서야 ‘잔치의 기쁨’에 듭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화려한 등도 결국 꺼집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의 등불에는 ‘사랑의 기름’이 채워져 있는가?
나는 ‘남에게 보이는 행실’만 있고 ‘속의 사랑’은 비어 있지 않은가?
나는 평소에 사랑을 ‘미리’ 길어 두는가?
나는 ‘늦었다’ 절망하지 않고 지금이라도 돌아서는가?
주님,
제 등불을 ‘사랑의 기름’으로 채워 주소서.
늦었다 절망하지 않고 지금 당신께 돌아서게 하시고,
꺼지지 않는 등불로 잔치의 기쁨에 들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