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어제 모든 성인의 날에 이어 오늘 위령의 날을 지내고 있는데
이는 우리를 떠난 영혼들을 기억하는 날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떠나 천국에 든 성인들과 아직 그렇지 않은 영혼들이 있다는
것이 두 축일의 차이점이라는 것쯤은 우리가 익히 다 아는 바이고,
그분들을 기도하는 날이 바로 오늘 위령의 날이라는 것도 다 아는 바입니다.
그러나 왜 축일의 순서가 모든 성인의 날이 먼저이고 위령의 날이 다음인지
그 의미에 대해서 우리가 오늘 알아야 하고 숙고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모든 성인처럼 하느님께서 계시는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최종 목적인데 아직 하늘나라에 가지 못한 영혼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이란 하늘나라를 향해 가는 도정에 있는 존재들이어야 합니다.
문제는 이걸 인정하고 하늘나라로 가는 행복 도정에 오른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을 부정하기에 아예 그 도정에 오르지 않고 이탈한 인간도 있다는 겁니다.
이 도정에 오르지 않아 완전히 이탈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 지옥이요,
이 행복 도정에 오르긴 했지만 아직 하늘나라에 이르지 못한 이들이
있는 곳이 연옥이라고 믿는 것이 우리 가톨릭 신앙입니다.
여기서 저는 연옥에 있다고 믿는 것이 우리 가톨릭 신앙이라고 했는데
이는 연옥 교리를 믿지 않는 개신교와 다르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개신교 신자들은 사실 대단한 믿음의 소유자들입니다.
하느님을 믿으면 직천당한다고 철석같이 믿으니 말입니다.
문제는 믿음의 내용이고 실천입니다.
첫째로 그것은 가난 실천입니다.
영으로 가난한 이들이 하느님 나라를 소유한다는
행복 선언의 말씀을 믿고 실제로 모든 것을 팔아 하느님 나라를 사야 합니다.
하늘나라는 모든 것을 팔아 사야 할 밭에 묻힌 보물이라는 주님 말씀,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주님을 따라가야 갈 수
있는 곳이라는 주님 말씀을 믿고 그대로 실천해야 갈 수 있는 곳인데
복음의 부자 청년처럼 아무것도 버릴 수 없고 나눌 수 없으면
하느님 나라를 향한 이 행복 도정은 출발조차 할 수 없겠지요.
둘째로 사랑 실천입니다.
나만 하느님 사랑 안으로 들어가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이웃은 사랑 않고 하느님만 사랑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성인들의 통공을 믿는 우리는 사랑 통공을 실천해야 합니다.
성인들처럼 하느님 사랑 안에서 모든 사랑이 통해야 합니다.
최후 심판의 비유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해야 합니다.
천국은 주님의 형제들인 가난한 이들을 주님인 듯이 사랑해야 갈 수 있고,
한 마리 양을 찾아가시는 주님처럼 길잃은 형제와 함께 갈 때 갈 수 있고,
이웃을 겨우 사랑하는 우리가 마침내 원수까지 사랑해야 갈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행복 도정에 있고,
아직까지 연옥에 있는 영혼이 있습니다.
행복 도정에 있는 우리와 아직 연옥에 있는 연령들이
함께 천국에 가기 위해서 통공의 기도를 같이 바치는 오늘 우리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