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오늘도 일찍 일어나 제 작은 방 벽에 등을 기대고

오늘 축일의 독서와 복음을 묵상하며 오늘은 한국 순교자 대축일이기에

성인들에 비추어 저의 삶을 성찰하고 반성을 하였습니다.

 

저의 반성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우리 순교성인들은 목숨을 바치셨는데

나는 바칠 생각은 없고 그저 받으려고만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상의 불순교적인 삶 또는 반순교적인 삶이었습니다.

 

먼저 바칠 생각은 없이 받으려고만 한다는 것에 대해서 보면

우선 이 성찰이 제가 사람들로부터 받으려고만 하고

주려하지 않는다는 것과는 다르다는 겁니다.

 

물론 제가 신자들로부터 사랑이건 선물이건 드리는 것보다

받는 것이 훨씬 많으며 뒤집어 얘기하면 받는 것은 많은데

드리는 것이 훨씬 적은데 이것을 부정하는 말은 아니지요.

 

바칠 생각은 없고 받으려고만 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하느님께 대해서 그렇다는 겁니다.

 

사람들에게는 그래도 얼마간 제 사랑을 드리려고 하고,

가진 것을, 아니 받은 것을 얼마간 나누려고 하지만

하느님께는 바치려는 마음이 애초에 너무 없고

바치는 정성과 예물이 없거나 있어도 거의 없다는 뜻입니다.

 

물론 아이가 엄마에게 그러하듯 우리도 하느님께

드리는 것은 없고 받기만 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저와 하느님의 관계이고 이 면에서는 여러분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사랑을 바치려는 마음이 필요하고

바칠 것이 턱없이 부족하다면 희생이라도 바쳐야 할 텐데

바치려는 마음이 밑바닥에서부터 없다는 성찰과 반성인 겁니다.

 

시골 할머니가 신부님께 드릴 것이 없으니

감자라도 쪄서 드리는 것과 같은 마음 말입니다.

 

두 번째는 일상의 불순교적인 삶 또는 반순교적인 삶입니다.

오늘 아침 성찰을 하다 보니 성인들은 목숨을 바쳤는데

저는 저의 임종을 생각할 때 점점 나이 들수록

추한 죽음에 대한 염려 때문에 정말 추하지 않게 죽는 것이

일상의 바람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자다가 조용히 죽었으면, 또는

좀 더 고상하게 기도하다가 죽었으면, 그리고

그제 새벽에 혼자 미사드릴 때는 이렇게 미사 드리다 죽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런 생각들을 많이 하는 거였습니다.

 

순교까지는 아니더라도

적극적으로 나의 삶을 주님께 바치고 이웃을 위해 바치려는 생각 없이

그저 안전하게, 편하게, 추하지 않게 죽으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 나가서도 모두들 자기 잇속과 편함과 자존심을 챙길 때,

또 그렇지 않은 저를 바보 취급을 할 때 제 속으로

그래, 내가 바보가 되어주는 거야!’라고 사랑으로 잘도 의미부여하지만

하느님 때문에라고 일상의 의미부여를 못하고 있습니다.

 

다른 날은 몰라도 순교자 축일인 오늘만이라도

순교의 의식, 하느님께 바치겠다는 의식을 가지고

바보짓이라면 바보짓을 하고, 사랑이라면 사랑을 해야겠습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22Sep

    연중 24주 토요일-제자에게는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하고 외치셨다.”   오늘은 복음을 읽어 내려가다가 예수님께서 외치셨다는 부분이 눈에 띄었고, ‘위엄 있게 말씀하시면 되지 외치실 것까지 뭐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왜 외...
    Date2018.09.22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748
    Read More
  2. No Image 21Sep

    성 마태오 사도 축일-자비의 학교에서 배우댜.

    제 생각에 마태오사도는 우리보다 특별히 죄인이 아니었었습니다. 당시에는 세리가 모두가 미워하는 죄인이었지만 오늘의 우리에게는 우리와 비슷한 죄인, 곧 자기 잇속을 차리는 사람으로 생각하면 좋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주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Date2018.09.21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004
    Read More
  3. No Image 20Sep

    한국 순교 성인 대축일-순교자 축일에 하는 저의 반성과 봉헌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오늘도 일찍 일어나 제 작은 방 벽에 등을 기대고 오늘 축일의 독서와 ...
    Date2018.09.20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1027
    Read More
  4. No Image 19Sep

    연중 24주 수요일-스러져야 할 사랑

    이런 마음으로 강론을 쓰면 안 되는데 강론을 쓰고 나면 이런 마음이 바뀌기를 바라며 강론을 씁니다.   남자의 계절인 가을에 가을을 타기 때문인지 또는 기력이 떨어졌기 때문인지 요즘 왠지 기운이 없고 허무감 같은 것이 얼마간 있습니다.   그래...
    Date2018.09.19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3 Views1060
    Read More
  5. No Image 18Sep

    연중 제24주간 화요일

    과부에게 외아들은 그녀의 전부나 다름없었습니다. 유다 사회에서 여자들은 남편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살았고, 그래서 남편이 없는 과부들은 아들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외아들의 죽음이란 과부에게 있어서 스스로 ...
    Date2018.09.18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1 Views210
    Read More
  6. No Image 18Sep

    연중 24주 화요일-병의 치유가 곧 구원은 아니다.

    주님께서 오늘 과부의 외아들을 되살리신 얘기는 과부와 외아들에게 베풀어진 구원 사건으로만 볼 수 있고, 불쌍한 과부이니 구원을 베푸심은 마땅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이들의 구원을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보고 의미를 새겨야 할 사건입니다. ...
    Date2018.09.18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165
    Read More
  7. No Image 17Sep

    성 프란치스코 오상 축일-상처의 치유를 프란치스코에게 배우다.

    요즘 같이 상처를 받고 신음하는 사람이 많은 때에, 프란치스코의 오상 축일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의구심이 들면서 오늘은 이런 관점에서 묵상을 해봤습니다.   참으로 요즘은 상처 받았다는 사람이 많고 그래서 여기저기서 Hea...
    Date2018.09.1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3 Views1420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 643 Next ›
/ 643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