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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4 10:40

2018년 성대서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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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월요일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세 명 형제의 성대서약식이 있었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인천 부개동 출신의 최경환 프란치스코 형제, 서울 역촌동 출신의 이철희 미카엘 형제, 대전 전민동 출신의 김재인 스테파노 형제 였습니다.


성대서약식에서 관구봉사자 호명환 가롤로 형제는 강론을 통해 하느님의 선을 끊임없이 바라보는 열린 마음으로 공동체 안의 형제들과 그리고 또 우리 주변의 형제 자매들과 함께 참여의 삶, 믿음을 삶을 살아가자고 초대하며, 동시에 이미 서약을 발한 형제들도 이 세 명의 형제들과 더불어 믿음과 참여의 깨어있음을 새롭게 살아갈 결심을 하자고 독려하였습니다. 아래에 관구봉사자의 강론 전문을 붙입니다.


 


T.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 주어진 시간과 소명: 우리 각자에게는 일정량의 시간과 소명이 하느님께로부터 주어집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의 양과 소명의 형태는 다 다르지만 그 가치와 그 중요성은 너무도 클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눈에 같은 가치와 같은 중요성을 지닙니다. 또한 주어진 시간과 소명의 형태와는 상관없이 우리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진 것은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과 소명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실현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고 실현해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해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세상은 우리에게 효과적이고 유용한 결과를 요구하고 있고, 우리는 여기에 편승하여 그 상응하는 결과를 냄으로써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잠시 지나갈 만족이나 평판을 얻으며 기뻐하기도 하고, 또 그렇지 못했을 때는 슬퍼하거나 좌절하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고 실현해가는 것을 이런 가짜 자기실현이라는 것으로 대체시키면서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참 슬픈 일입니다! 그런데 더 슬픈 것은 (우리가) ‘이것이 참으로 슬픈 일’인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 오늘 세 명의 형제들이 우리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에서 장엄종신서약을 발합니다. 이들은 프란치스코의 제자들로서의 삶, 프란치스칸 수도자들로서의 삶을 통해 죽을 때까지 자신들에게 주어진 삶의 의미를 찾고 실현해 가겠다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성대서약식에 참석한 우리 모두도, 수도자들이건 아니건 간에, 이 세 명의 형제들과 더불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의미를 참으로 찾아가고 있고 실현해가고 있는지를 곰곰이 숙고해보고 그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있도록 주님께 도움을 청하도록 합시다!
  • 수도자-연결과 통합을 이루는 이: 본래 라틴말로 ‘수도자’는 ‘Religiosus’ 혹은 ‘Religiosa’입니다. 이 말은 Religio, 즉 ‘종교’라는 말에서 유래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Religio라는 말은 ‘re-ligare’, 즉 “다시 묶어주다.” 혹은 “다시 연결해주다.”라는 말에서 온 단어입니다. 말하자면 종교는 다시 묶어주는 역할을 하는 기관이고, 여기에서 나온 단어 Religiosus, 즉 수도자는 그와 같이 다시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해석할 수 있는 말입니다. 즉 종교와 수도자는 자기 자신 안에서의 자기 통합을 이루어야 할 존재이고, 하느님과 인간, 하늘과 땅, 그리고 우리 서로를 통합시켜주는 존재인 것입니다. 
  •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느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바라시는 바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저 시간이 간다고 해서 실현되는 것도 아니고, 또 어떤 선택을 하여 그 일에 그저 임한다고 해서 실현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그저 기계적으로 행동하고 내 힘으로 정해진 규칙들을 지키는 삶을 살아가는 정도로서는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이 뜻을 실현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통합시켜주시고 치유시키고 화해시켜주시며 하나의 어우러짐으로 이끌어 가시는 하느님께의 참여입니다. 이 참여가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사실 믿음은 참여의 문제이지 단순한 말의 고백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도한다고 해서 다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 참여하는 것이 아니면 기도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우리 삶의 모델인 프란치스코: 어려운 말이긴 합니다만, 이것을 프란치스코 성인은 잘 이해했고, 그래서 그의 전기 작가 첼라노의 토마스는 그를 기도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기도 그 자체였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그는 모든 것을 연결시켜주는 존재에게 그런 존재로서 자신을 참여시키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가 이런 삶의 자세를 갖게 되기 시작한 결정적인 전환점은 그가 ‘포지오 부스토네’라는 곳에서 했던 “용서체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그곳에서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죄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며 기도하던 중 그는 하느님께로부터 이런 음성을 듣습니다. “프란치스코야, 너의 죄는 용서를 받았다!” 이 체험이후부터 그는 이런 인사말을 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Bon Giorno, Bona Gente!” “좋은 날입니다. 좋은 사람들이여!” 이제 그는 하느님의 눈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의 눈이 하느님의 눈에 통합된 것입니다. 그도 역시 통합된 삶을 살기 시작했고, 그의 눈에는 모든 것이 형제자매의 피붙이 같은 우주적 연결고리 안에 들어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 “믿음의 삶이란?” : 그러므로 믿음의 삶은 “그저 불가능한 것이 실현될 것이라고 믿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궁극의 사랑이신 분 안에 쉬는 법을 배우고 무한히 선하신 분 안에서의 쉼을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는 깨어있음의 길입니다. 이런 배움의 길을 가다보면 어느 순간 우리는 우리가 그분의 따스하고도 견고한 손길로 지탱되고 있고 인도되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 역시도 참여의 문제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 참여는 단순히 마음의 동의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선이시고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끌어안으시는 체험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고, 또 그 체험을 하느님과 더불어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루는 것이라기보다는 열린 자세로 그분께 참여함으로써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 하느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과 신뢰: 제가 틱 탓 한 스님의 책에서 읽은 이야기 하나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신경증에 걸리게 되었는데, 그의 증세는 스스로를 ‘옥수수 알’이라고 믿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의 상태를 보다 못한 가족들이 그 사람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그 환자의 일상 중 하나는 매일 아침 의사와 만나 대화를 나누는 일이었습니다. 의사는 매일 그 환자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오늘 기분은 어떻습니까?” “오늘 당신은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그러면 늘 그 사람의 대답은 한결같았습니다. “그저 그렇습니다.” “나는 옥수수 알입니다!!” ... 그런데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아침 의사가 같은 질문을 했는데, 그가 평소와는 전혀 다르게 이렇게 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기분이 참 좋습니다.” “나는 사람입니다.” 의사는 깜짝 놀랐지만, 그가 옳게 답하는 것을 듣고 기뻐서 다른 여러 가지 질문들을 했습니다. 이 모든 질문에도 그 환자는 매우 정상적인 답을 했습니다. 그래서 의사는 이제 그를 퇴원시켜도 되겠다 싶어, 퇴원 날짜를 정하고 그 환자와 다른 간호사 한 사람 함께 병원 뜰에서 산책을 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건물 저편에서 닭이 한 마리 나타나자 이 환자가 갑자기 “닭이다!”라고 소리치며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의사도 놀라 그 환자에게 쫓아가 그를 붙잡고는 물었습니다. “아니, 아까는 당신 ‘사람’이라고 분명히 말하지 않았소? 그런데 왜 닭을 보고 도망을 치는 거요?” 그러자 이 환자가 의사를 보고 어이없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허 참~ 의사 양반, 나는 내가 ‘사람’이라는 걸 분명히 압니다. 그런데... 저 닭이 나를 ‘옥수수 알’이라고 생각하면 어찌하겠소?...”


  • 틱 낫 한 스님은 이 이야기를 서로간의 신뢰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만, 저는 이 이야기의 주제를 우선 하느님과 우리의 신뢰의 문제에서부터 시작해서 숙고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공동의 성무일도를 바치면서도, 개인적으로 기도를 하면서도, 또 일하는 가운데서, 형제들과 함께 사랑을 나누는 가운데서 열린 마음으로 우리에게 용서와 사랑으로 다가오시는 분을 바라보고자 한다면 그분은 우리에게 당신의 이 사랑에 찬 신성한 춤을 함께 추자고 당신 손을 내밀어 초대해주실 것입니다!


  • 성대서약을 발할 세 명의 형제여러분, 이미 서약을 한 우리 형제들과 더불어, 그리고 우리가 함께 하는 우리 주변의 형제자매들과 더불어 이 참여의 삶, 믿음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박차를 가하도록 합시다! 이런 삶은 그저 삶의 일정을 따라 기도에 참여하고 일하고 밥을 먹는 그런 정도의 삶에서가 아니라 깨어있으면서 그 하느님의 선을 끊임없이 바라보고자 하는 우리의 열린 마음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그렇게 열정적으로 기도하고 열정적으로 일하며 열정적으로 형제애를 나누는 삶을 살아가도록 합시다!! 이미 서약을 발한 우리 형제들도 오늘의 이 세 명의 형제들과 더불어 믿음과 참여의 깨어있음을 새롭게 살아갈 결심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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