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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 프란치스코의 임종 (1886- 1887)

작가 : 도메니코 브르스키니 Domenico Bruschi 1840- 1910)

크기 : 프레스코

소재지 : 아씨시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지난 5월 런던 대영 박물관은 1개월간 성 프란치스코에 대한 특별전을 마련했다. 이 전시회는 지난 2015년에 계획해서 거의 10년 가까운 시간에 걸쳐 준비된 것이었다. 대영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만이 아니라 온 세계에 흩어져 있는 성 프란치스코에 관한 작품을 대여받아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를 이해할 수 있는 한편의 모범 답안을 준비했다.

 

이 세상에 있는 수 많은 작가들의 작품에서 이렇게 성 프란치스코를 특별히 선정한 것은 종교적 차원만이 아니라 성 프란치스코가 현대인들에게 제시하는 특별한 관심과 가치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성 프란치스코를 단순히 경건한 종교인이 아닌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힌 현대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로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2015년 교황님이 작성하신 회칙인 찬미 받으소서 : Laudato si”의 정신으로 오늘날 세계가 처한 기후 재앙, 자연 보호같은 인류의 사활이 걸린 문제의 심각성을 이해한 처방전으로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난민 문제, 전쟁의 비참성과 심각성 문제 등 어느 시대보다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인류 재앙을 예방하기 위한 해결책으로서 성 프란치스코의 가르침을 제시했다.

 

대영 박물관 측은 오늘 인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으로 성 프란치스코를 제시했다. 세상을 멸망의 위기에서 구할 인류의 스승으로 성 프란치스코를 등장시켰다이것은 참으로 교회가 여러 이유로 수세에 몰리고 있으며 사양길에 들어선 것처럼 보이는 현실에서 너무도 기이하고 충격적인 것이다.

  

이제 성 프란치스코는 어떤 종교의 성인이기 이전 현대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위기의 해결사로 등장하고 있으며 교황님의 가르침과 행동은 가톨릭 신자들의 신앙을 키워주는 것 만이 아니라 인류의 미래를 염려하는 많은 세계인들에게 큰 희망을 주고 있다.

 

     1224년 주님에 대한 사랑으로 주님과 같은 고통을 나누고자 청한 기도의 응답으로 오상을 받은 성인은 몸이 쇠약해지면서 여러 신체적인 고통을 당하게 되고 특히 눈이 멀어져서 당시 안과 치료를 위해 눈을 불로 지지는 고통을 당하면서 인간적으로 만신창이의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성인은 이 고통의 와중에 그 유명한 태양의 노래를 작곡해서 오늘 인류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셨다. 그후 1226년 죽음이 가까워짐을 감지한 성인께서는 당신이 수도생활을 시작하신 포르치웅꿀라 수도원에 오셔서 형제들의 기도 가운데서 임종을 맞으셨다.

 

작가는 이태리 페루지아 출신으로 피렌체와 베네치아를 왕복하면서 성화 기법을 익혔고 특히 그는 예외적으로 영국에 6년을 머물면서 이태리에서는 좀 생소한 영국의 화풍도 익혀 이 작품에 인용했다.

 

프란치스칸 영성의 요람인 포르치웅꿀라 수도원은 성인의 가난을 철저히 지키고 증거하기 위해 성당 구조나 예술 작품에 있어서도 검박함을 강조하는 방향성이었기에 이 작가의 작품 역시 당시 그리 유명한 작가나 화려함을 보이는 것과 전혀 무관한, 특히 성인의 임종을 표현하기 위해 프란치스칸적인 특성을 기본에 깔고 제작했다.

 

성인의 생전 의사가 당신의 신체조건이 너무 허약해서 죽음이 임박했다고 했을 때 성인은 죽음에 대한 어떤 슬픔이나 불안이 없이 나의 자매인 죽음이여라고 기도하시고 제자들에게 둘러 싸여 죽음을 맞는 모습이다. 죽음을 준비하며 제자들 가운데 누워계신 성인을 영접하려 하늘에서 일군의 천사들이 내려오고 있다.

 

성 프란치스코에 있어 죽음은 생명의 마지막 나래도 아니고 죽음을 통해 이 세상 생명에서 천상생명으로 건너가는 것이기에 프란치스칸들은 이것을 전례적으로 전이(Transition)라고 부른다.

 

마치 지하철에서 갈아타는 환승처럼 삶의 연장과 완성의 관점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선 제자들 한 가운데, 성인이 누워 계시는데 제자들의 수도복 색깔이 너무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프란치스코 회원들을 그들이 입는 수도복의 색깔을 따라 회색 형제라고 (Grey friary) 불리기도 했다.

 

이후 수도회가 세 갈래로 분리되면서 검은색 밤색 두건의 모양으로 다양하게 표현되면서 검정 색과 밤색으로 표현되기도 했으나 이것은 프란치스칸 전통에서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선 성 프란치스코만 회색 수도복을 입고 있다. 이것은 회색이 아니라 초기 회원들은 의복 색깔이 자연색 즉 무명이나 양털같은 염색하지 않는 색깔을 입은 것이 세제가 그리 좋지 않던 시대에 입다 보면 회색으로 변하기도 하고 이것을 더 오래 입으면 갈색이 된 것을 의미했다.

 

즉 당신 염료가 비싼 시대에 아무 색깔이 없는 옷은 가난의 상징이 될 수 있었고 계속 입다보면 색깔이 변한 것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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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는 프란시스코 성인에게만 희색의 수도복을 입힌 것은 성인이 바로 수도회 창설자 즉 가장 순순한 존재임을 알리는 것이고 제자들의 색깔이 변한 수도복을 입고 있는 것은 성인 당시 이미 수도회의 성격이 프란치스꼬가 생각하신 이상과 변질되고 있어 성인이 고심하던 상황을 표현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성인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성인의 가르침과 좀 거리가 있는 방만한 삶을 바라는 것이 여러 제자들의 바램이었고 성인은 여기에 대해 깊은 고뇌를 하게 된다.

 

성인이 폰테골롬보에서 수도 회칙을 작성할 때 성인은 이미 제자들의 실망스런 요청을 받고 고심하게 되었다.

 

즉 성인이 요구하는 것이 너무 지키기 어려운 것이니 좀 완화된 것을 규칙으로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강하게 받고 성인은 많은 갈등을 느끼게 되었다.

 

자신은 하느님으로부터 너무나 명백한 계시를 받았음을 확신하고 있었기에 제자들이 이것을 완화시켜 달라는 요청은 참으로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서도 제자들은 프란치스코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었기에 스승의 죽음 앞에 경건한 모습으로 도열해있다.

 

이런 갈등의 순간에 성인은 요한 복음의 수난 부분을 제자에게 읽어 달라고 하면서 자신의 족음을 주님의 죽음과 일치되도록 기도하면서 임종을 준비했다.

 

그의 인생 전체를 관통하던 말씀은 나에겐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 (필립피 1,21)와 자신의 신앙 체험이 영근 나의 하느님 나의 전부여!” 라는 말씀을 되내이며 그가 사랑하던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창설자 당시 이미 수도회의 성격이 프란치스코가 생각하던 이상에서 벗어나 혼미한 상태가 되는 현실을 보면서 성인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다.

 

주님 역시 자기 제자들로부터 반대와 버림을 받았다는 것을 생각하며 그는 인간적인 위로 못지 않게 자신의 실망과 아픔이 그리스도를 닮은 삶의 표징으로 생각하며 위로를 받았기에 그의 표정은 안온스럽다.

 

     그런데 작가는 오른편에 두 명의 여인을 등장시키고 있는데, 이 여인은 성 프란치스코의 삶에서 자주 등장하며 또 성인의 삶을 이해하는데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이다.

 

이 여인은 1239년 선종한 로마 귀족인 세테솔리의 야고바 부인이며 성인은 1209년 교황님으로부터 수도회 회칙 인준을 받으러 로마에 갔을 때이 부인은 성인이 로마에 머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었는데 이 자리가 오늘날 로마의 트라스테베레에 있는 리파 수도원이다.

  

성인을 존경하던 야고바 부인은 처음 만났을 때 긴 여행에 지친 성인이 편한 잠을 잘 수 있도록 안락한 베개를 마련하였으나 성인은 이 베게를 두고 작은 돌 하나로 주무셨다는 일화와 함께 그 돌이 오늘까지 리파 수도원에 보관되어 있다.

 

성인과 야고바 부인은 서로가 영적으로 높은 단계에 있었기에 성을 초월해서 자유로운 인간 관계를 유지하면서 야고바 부인을 형제라고 부를 만큼 이들은 자연스러운 처지에서 향기로운 우정의 삶을 키웠다.

 

성인은 당신이 죽을 날이 임박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로마에 있던 야고바 부인에게 자신의 처지를 알리며 올 때 먹고 싶은 과자를 좀 가져오라고 부탁했는데, 성인은 부잣집 아들이라 이런 미식이 몸에 베었으며 수도생활을 시작하면서 검박한 삶을 살았으나 이것이 찌들림이 아닌 참으로 검박하면서도 인간적인 멋스러움이 드러나는 것이다.

 

선의이긴 해도 성 프란치스코의 가난을 지나치게 염격 일색으로 가난을 표현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것은 당시 너무도 부유한 교회에 대한 깊은 반발심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를 쇄신시키기 위한 좋은 생각으로 성인을 극단적 가난의 모델로 제시한 것이지만 여기에는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것은 성인의 인간적인 멋스러움을 파괴하면서 수도생활 자체를 인간적으로 문제가 있는 생활로 이해되게 만드는 것이다.

 

임종이 가까움을 느낀 성 프란치스코는 야고바 부인에게 자신의 수의를 만들어달라고 청하였고 임종의 순간에도 유일하게 성 프란치스코 곁을 지킨 여인이었다.

 

이처럼 성인은 성의 초월하여 우정 관계를 만들면서 인간적인 자유로움과 격식에 매이지 않는 삶의 모습을 보여 주셨다.

 

우리는 많은 순간 신앙을 족쇄처럼 생각해서 규칙이나 격식에 매임을 성덕의 표현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팽배해있다. 그래서 종교의 높은 수준의 표현인 수도생활과 수도자의 모습 역시 이중성이나 위선성이 필요악 처럼 드러나면서 수도자들이 진리의 사람이기 이전 시대의 눈치를 보는 사람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이 장면은 성 프란치스코가 참으로 얼마나 자연스럽고 감동적으로 인간 관계의 우정을 키우며 살았는지 알려 주는 것이다.

 

수도자들은 이 세상 어려움을 도와주는 역할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어색하게 표현하지 않고 너무도 자연스럽게 표현하면서 멋스러움을 보이는 삶이어야 함을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강조하고 있다.

 

두 여인은 붉은색 옷과 푸른 색 옷을 입고 있는데, 이것은 의인화 된 것이며 프란치스코의 절친 야고바 형제의 진면모를 상징화 한 것이다. 성화에서 붉은 색은 인성의 상징이고 푸른 색은 신성의 상징이기에 성모님의 옷은 바로 이 두 색깔의 합성으로 표현했다. 여기에서 작가는 의인화된 두 명의 여성을 통해 야고바 부인의 인생이 하느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을 융합한 너무 멋진 것임을 표현했다.

 

이 모습은 프란치스칸이 표현한 자유로움 속에 영근 인간미를 표현하는 것이고 프란치스코 당대 뿐 아니라 현대에 이르기까지 생각할 점과 감동을 주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사후 시신은 성인의 소망대로 오늘 아씨시 대성당 아래층에 모셔져 있다. 여기 성인의 무덤을 중심으로 세 명의 제자들의 무덤이 있는데 ,바로 성인의 맞은편에 야고바 부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성인들의 생애에서 종종 남매간이거나 아니면 사명의 공동 협력자로서 여성은 등장하나 성 프란치스코와 야고바 부인처럼 우정의 관계로 엮어지는 것은 아주 드문데 이것은 바로 편협한 사고방식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오해를 불러 일으킬가 하는 조심성 때문이다.

 

프란치스칸들은 이런 폅협함에서 해방되었기에 야고바의 무덤을 성 프란치스코의 무덤 곁에 둔 것이다.

 

작가는 성 프란치스코의 죽음이 이 세상을 하직하는 임종이 아닌 하늘나라로 전이임을 표현하기 위해 밝은 색조를 사용하면서 성 프란치스코를 영접할 천사들의 합창이 들릴 것 같은 밝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성 프란치스코는 당대에 이미 제자들의 이완된 모습을 봐야 하는 아픔과 실망을 겪어야 했으나 하느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며 자기가 살아야 할 삶을 살았기에 그의 슬픔이나 실망이 그를 찌들리게 만들 수 없었다.

 

오히려 야고바를 통해 표현되는 서로 이해하고 신뢰할 수 있는 인간적 우정안에서 태양의 노래를 부르는 밝은 삶을 사셨다.

 

이런 관점에서 태양의 노래는 그분의 신앙 체험의 정수이며 삶의 찬미가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야고바 부인을 등장시켜 프란치스코의 인간 관계가 얼마나 개방적이며 멋진 것인지를 표현함으로서 프란치스코의 죽음이 세상과의 결별의 죽음이 아닌 새로운 삶의 시작이란 밝은 희망과 함께 자연스러운 인간 관계 안에서 수도자의 삶을 살아가는 프란치스칸 삶의 향기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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