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30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십자가의 역설을 삶의 계시로 받아들이는 믿음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으며 터무니없는 말로

비난을 다 받게 되면 너희는 행복하다.” (마태 5,10-11)

 

죽기를 각오하면 산다.”

십자가의 역설은 행동하는 자비의 현장에서 발생한다.

관계를 회복하게 하는 가난과 겸손의 길,

즉 내려가고, 내려놓고 허용하고 놓아주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십자가의 역설을

삶의 계시로 받아들이는 믿음만이

하느님 나라의 행복이라는 세 가지 관계를 회복하여

원죄가 아닌 원복이라는 낙원을 지금 여기로 옮겨 놓을 수 있다.

 

옳은 일은 사랑하는 일이며, 깨지고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다.

하느님의 선하심과 자비가 나를 통하여 너에게 흘러가게 하는 과정이다.

일상적인 관계 안에서 선을 행하고도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방해하는 걸림돌과 최대의 적은

완전성이라는 그림을 그려놓고 거기에 맞추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과만을 중요시하는 문화가 만든 덫이다.

 

우리는 언제나 과정의 진리를 산다.

과정의 진리만이 우리의 몫이다.

과정이 없는 결과는 없다.

십자가는 과정의 진리를 사는 이들에게는

무질서와 비참함과 모순을 받아들이는 짐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는 이에게는 편한 멍에와 가벼운 짐일 뿐이다.

왜냐하면, 위로부터 받은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 관계를 회복하려고

십자가의 역설을 삶의 계시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믿음이다.

 

십자가의 역설을 받아들이는 믿음은

합리적이지 않고, 황당하고, 죄가 많은 것을 통합시켜

선한 목적을 위해 사용하도록 만든다.

십자가에 달리신 분의 눈으로 관계를 바라보는 것이 회심에 이르는 길이다.

역설을 부인하면 삼위일체 사랑의 신비에 접근할 수 없다.

 

가난과 겸손의 길에서 피할 수 없는 십자가는 우리에게

버림받았다는 느낌에 직면하게 하고

잘못을 저지른 이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며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라고 말하게 한다.

오래 참고 견디면서 함께 아파하는 마음은

그리스도 예수 앞에 무릎을 꿇는 이들이 보여주는 믿음이다.

부활은 그다음에 찾아오는 결과다.

 

가난과 겸손으로 관계가 회복되면 생명이 넘친다.

생명의 에너지로 서로를 돌보고 서로에게 자유를 주는 가운데

기쁨에 차서 경탄하는 신비에 접근한다.

마침내 하느님 나라의 행복이

내가 서 있는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원복의 낙원이 펼쳐지는 것이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자유나눔 게시판

자유롭게 글을 남겨주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370 초대 초대   나무들이 웃는다 연초록 바다에서 싱싱하고 해맑은 미소로   안에서 밀어 올리는 기쁨 너를 받아들이고 마음을 열게 하는 아버지의 친절한 눈빛과 미소   ... 이마르첼리노M 2023.04.28 165
1369 사도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우리의 믿음 사도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우리의 믿음   “지극히 높으시고 영광스러운 하느님이시여, 내 마음의 어두움을 밝혀주소서 주여! 당신의 거룩하고 진실한 뜻을 실행... 2 이마르첼리노M 2023.04.26 307
1368 부활은 역설의 행복 부활은 역설의 행복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내어주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넘치게 된다. 혼자만 먹으면 맛이 없다. 혼자만 가지려 하면 기쁨이 줄어든다. 혼자... 이마르첼리노M 2023.04.17 203
1367 죽음과 부활 (관계성의 신비) 죽음과 부활 (관계성의 신비)   내어주는 죽음이 내어주는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죽음이 받아들이는 기쁨으로   내려가는 죽음이 내려가는 기쁨으로 내려놓는 죽... 이마르첼리노M 2023.04.09 307
1366 부활의 신비는 내어주는 몸과 받아들임의 신비 (성삼일의 묵상) 부활의 신비는 내어주는 몸과 받아들임의 신비 (성삼일의 묵상)   최후 만찬과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기까지 예수께서 보여주신 행동하는 자비는 계시의 완성이... 이마르첼리노M 2023.04.05 715
1365 성주간 (계시의 완성을 보는 때) 성주간 (계시의 완성을 보는 때)   자비를 깊이 바라보다가 자비가 되어 자비가 흐르도록 길을 떠나는 때   자비의 열매는 나의 필요성을 없앤다. 스스로 높일 ... 이마르첼리노M 2023.03.29 279
1364 꽃피는 계절에 꽃피는 계절에   꽃피는 계절에 향기로 다가와 볼을 비비는 이여!   벌들에게 꿀을 내어주면서도 순수한 꽃으로 남아계신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생명이 만... 이마르첼리노M 2023.03.20 238
1363 인식의 차이 인식의 차이 대해서 아는 것과 아는 것    대해서 아는 것은 객관화된 지식이지만 아는 것은 경험된 지식입니다.   경험된 지식은 왜? 어떻게? 에서 나오는 것이... 이마르첼리노M 2023.03.19 206
1362 하느님의 무상성(빚의 탕감) 하느님의 무상성(빚의 탕감)     &quot;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quot; (마태 18,22) 일만 달란트나 되는 돈을 빚진 사람이 왕 앞에 끌려왔다... 이마르첼리노M 2023.03.15 244
1361 의로움의 차이를 극복하는 믿음 의로움의 차이를 극복하는 믿음   사도 바오로는 바리사이의 의로움을 쓰레기로 버렸다.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은 나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벤야민 지파 출신이... 이마르첼리노M 2023.03.03 456
1360 용서가 있는 곳에는 힘을 사용하라는 내면의 유혹이 있다. 용서가 있는 곳에는 힘을 사용하라는 내면의 유혹이 있다.   우리는 선을 행할 때마다 측은한 마음으로 돌보시는 하느님의 자기 비움의 고통에 참여한다. 너를 ... 이마르첼리노M 2023.02.22 574
1359 무엇을 구원이라고 믿는가? 무엇을 구원이라고 믿는가?   내 믿음의 토대는 인류 구원에 대한 속죄 이론이 예수 그리스도의 형벌적 대속론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느님의 선에 참여하는 참여... 이마르첼리노M 2023.02.14 288
1358 욕구 충족의 노예에서 욕구 충족의 통제에 이르기까지 욕구 충족의 노예에서 욕구 충족의 통제에 이르기까지   욕구 충족의 노예에서 욕구 충족의 통제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갈등과 넘어짐을 반복하면서 하느님... 이마르첼리노M 2023.02.10 484
1357 난 너의 좋은 데를 안단다. 난 너의 좋은 데를 안단다.   세상은 온통 작은 기쁨들로 가득 차 있다. 다만 이 기쁨을 알아보는 능력이 없을 뿐이다.   하느님께서 새날로 주신 아침에 형제들... 이마르첼리노M 2023.01.30 434
1356 알맞게 창조된 나의 실재 알맞게 창조된 나의 실재   창조된 모든 피조물은 육화된 하느님 현존의 실재다. 우리가 경험하는 하느님은 진리이시며 선하시고 최상의 아름다운 분이시라는 ... 이마르첼리노M 2023.01.28 234
Board Pagination ‹ Prev 1 ... 4 5 6 7 8 9 10 11 12 13 ... 100 Next ›
/ 100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